최근 환율이 달러당 1천2백40원대를 넘나들면서 자금시장의 난기류가 드디어 외환시장에까지 전이된 느낌이다. 물론 통화당국이 묵시적인 시장안정 의지를 강력하게 밝힘으로써 환율은 일단 1천2백40원대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이번의 환율상승은 몇가지 점에서 음산한 한기를 느끼게 한다. 우선 그것이 단순한 국제수지상의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도와 연계되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환율상승이 세계시장에서 달러화가 전반적으로 약세기조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측면은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불길한 전조로 해석되기에 족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환율급등의 원인에 대해 시장내에서 커다란 견해차이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먼저 시장의 많은 관계자들은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두번째 측면, 즉 원화가 달러화의 전반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결국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제로 설명해야 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이유가 북핵 문제라는 것이다. 첫번째 측면에 대한 해석은 약간 복합적이지만 이것 역시 시장내에서 큰 이견은 없는 듯하다. 외국인이 주식시장과 원화시장에서 빠져 나가는 이유는, 하나는 역시 북핵 문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SK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에서도 보듯이 우리 기업의 전반적인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환율급등과 관련해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그것은 환율급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의 일치가 존재하지만 정부의 대응방향에 대해서는 시장참가자간에 동일한 정도의 의견일치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단에 동의하고도 처방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형국이다. 정책당국은 시장안정 의지를 묵시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외국인의 원화매도가 지속적 양상을 띄는 경우와 일시적 교란에 그치는 경우로 구분해 보자.우선 상대적으로 쉬운 일시적 교란의 경우부터 생각해 보자.이 때는 정책당국이 굳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곧 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섣부른 개입은 외환시장의 체질만을 약화시키고 시장참가자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보다 어려운 경우인 원화매도가 지속되고 심지어 외국인투자자 중 일부는 한국시장을 떠나는 경우에 대한 정책대응 문제를 생각해 보자.결론부터 말하면 이 경우에도 정책당국은 개입하면 안된다. 왜 그럴까. 외국인투자자들이 정말 한국시장을 떠나려고 할 경우 이를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시장을 떠나는 행동이 실질적으로 손해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화가치 하락을 방치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들은 달러화를 얻기 위해 많는 원화를 포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지지하면 이탈을 시도하는 외국인투자자는 정부 개입이 없었던 때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달러화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즉 원화가치 지지를 통해 정책당국은 시장이탈자에게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외환보유고만 낭비하고,외국인투자자 이탈을 막는데 큰 효과가 없다는 점을 97년 11월에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으로는 최근의 환율급등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북핵사태며,부분적으로 우리 기업의 투명성 부족이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을 보지 말고 다른 곳을 돌아 보아야 하는 것이다. -------------------------------------------------------------- ◇시론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