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연금삭감 공포'가 마침내 현실화됐다. 장기적인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금제도만은 그대로 유지했던 일본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국민연금 지급액 삭감이라는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이에 따라 연금만으로 생활을 유지해온 수백만명의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장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으로 동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민연금 지급 축소결정을 사회보장체계에 대한 전면 개편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30년 만의 국민연금지급 삭감=일본 정부는 7일 국민연금 기금의 적자에 따른 연금보장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앞으로 소비자물가 하락에 맞춰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올 4월부터 가구당 월 평균 국민연금 지급액을 현재의 23만8천1백20엔에서 0.9% 삭감한 23만5천9백80엔(약 2백30만원)으로 낮춰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국민연금을 삭감한 것은 1973년 수정된 연금제도를 시행한 이후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국민연금 삭감조치가 경기 침체와 인구 노령화 등에 따른 재원 고갈 우려로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늘어나면서 경제활동 인구가 매년 0.6%씩 감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금을 납부하는 인구는 줄어든 반면 연금 수령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 침체에 따른 임금하락으로 보험료 납부액이 줄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JP모건의 간노 마사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사회보장 펀드의 적자 규모가 지난해 8천억엔에서 올해 3조3천억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국민 연금 지급액의 삭감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제회복에 '찬물'=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의 국민연금 삭감이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일본인들의 행태를 감안할 때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즉 연금 수령자들이 소비를 줄여 경제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닛코살로먼스미스바니의 제프리 영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결정이 디플레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이제 물가가 하락하면 자신의 수입도 줄어들게 됨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