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9:57
수정2006.04.03 09:59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발(發)로 갖가지 '재벌개혁'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새 집권세력과 재계 사이에 '오해'와 '해명'이 시리즈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특정 그룹 표적설'로 시작된 '오해' 시리즈는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사회주의' 논란으로 또 한바탕 증폭되고 있다.
'표적설'은 기업개혁을 '점진적·자율적·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직접 진화(鎭火)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인수위원회의 목표는 사회주의"라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고위 관계자가 비판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로 양쪽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새 정부를 이끌 신(新)집권세력과 실물경제의 핵심 축(軸)을 이루고 있는 재계는 미우나 고우나 함께 손잡고 '경제 한국호(號)'를 이끌고 나아가야 할 중요한 두 수레바퀴다.
그런 두 개의 바퀴가 서로를 '개혁 대상''급진적 이상주의 집단' 따위로 규정지은 채 삐걱대고 있는 요즘의 상황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노선 갈등'을 지켜보면서 10년전의 미국을 되돌아보게 된다.
1992년 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칸소주 지사 출신의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H 부시 공화당 후보(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의 주류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불리는 영국계 보수 기득권층이다.
그런 미국에서 '변방 중의 변방'인 아칸소주 지사 외에는 중앙정치 경력이 없는,그것도 아일랜드계 40대의 무명 신예에 일격을 당한 미국 주류 사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더구나 공화당은 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신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 연방정부를 줄곧 장악해왔던 터다.
대폭적인 법인세 감면 등 친(親)기업 노선의 공화당 정권에 익숙해 있던 기업들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클린턴은 복지 확대와 의료(medicare) 개혁 등 진보적 공약을 내걸었던 만큼 기업들로서는 달가울 리 없었다.
클린턴은 현명했다.
기업 등 주류사회의 불안을 달래는 일이 급선무임을 간과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상·하 양원은 야당인 공화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겼다.
깐깐한 윤리교사 출신의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클린턴 대통령의 개혁 공약에 대해 "문제가 있는 공약은 철저히 반대하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클린턴이 택한 것은 '대화'와 '설득'이었다.
그는 야당의 초선 의원까지도 수시로 백악관으로 불러 정치 현안을 토론(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지음,'나는 보수다' 참조)했고,자신에게 뜨악했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과 비공식적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틈만 나면 만찬을 함께 하며 경제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던 골수 보수성향의 잭 웰치 GE회장,루이스 거스너 IBM 회장,웨일 샌포드 씨티그룹 회장 등은 나중에 클린턴 대통령의 든든한 후견자로 마음을 바꾸면서 뉴욕타임스로부터 'FOB(Friends of Bill's·빌 클린턴의 친구들)'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지난달 19일 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나를 반대한 분들까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심부름꾼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노 당선자가 참고했으면 싶은 얘기다.
'오해'와 '해명'의 피곤한 되풀이를 막을 '힘'과 '책임'은 어차피 새 지도자에게 있지 않겠는가.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