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숙 < 소설가 jms5244@hanmail.net > 떠들썩한 해맞이 행사와 함께 새해가 시작됐다. 바닷가로 산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달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새해 거리를 채우고 있다. 한바탕 통과의례를 치러낸 덕분인지 깨끗한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사람도 거리도 설렘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지금은 잠시 그 설렘을 그대로 두어도 좋을 때. 하지만 새해 아침 나는 우울하다. 시청 앞 광장 나무에는 여전히 꼬마전구가 매달려 있었고,밤이 되면 꼬마전구는 환하게 불을 밝혔다. 비단 거기뿐이 아니었다. 나무를 빈틈없이 휘감은 꼬마전구가 반짝반짝 작은 별처럼 빛나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밑동부터 차근차근 감아 올려 나무 전체를 불덩어리로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넓게 뻗어나간 가지 끝까지 촘촘하게 전구를 매달아 놓았다. 나무에 매달린 꼬마전구들은 밤새도록 빛났고,음식점 유흥업소는 사철 그렇게 나무에 전구를 매달아 시선을 끌었다. 세밑이 되자 나무에 전구를 매단 곳은 더욱 늘어나 도시와 근교는 온통 불빛이었다. 하긴 도시는 언제나 불빛 투성이였다. 네온과 간판과 자동차가 쉴새없이 내뿜는 빛의 천국.하지만 아무리 그렇긴 해도 나무에까지 전구를 매단 일은 나를 한없이 우울하게 한다. 백 년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나무는 몇백 년을 너끈히 살아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풍상을 견디는 나무의 힘이 숲을 이루고 산이 될 때 더불어 사람이 살아갈 터전이 마련된다. 한 그루 나무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다. 그런데도 해마다 나무에 전구를 매달고 불을 밝혀 밤거리를 장식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란 참 제멋대로라서 제게 필요한 일이라면 남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낮 내내 공해와 소음에 시달리는 도시의 나무에게 충분한 잠과 휴식이라는 리듬이 필요한 데도 그 생래적인 리듬을 깨뜨리면서까지 자기 만족을 추구할 뿐이다. 신선한 산소를 내뿜을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시달린 피곤한 몸으로,시커먼 굴개에 뿌리를 내린 채 서 있는 나무의 충혈된 눈이 지금 새해 거리를 힘없이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전깃줄에 바짝 조여진 몸이 바르르 떨면서 아프다 아프다 소리치다 안으로 삼켜진 비명을 삭이고 있을 것 같다. 그 나무들 사이로 자동차는 지나가고 네온은 빛나고,해는 미간을 찌푸리고 떠올라 있다. 새해 첫날의 햇빛을 서로 먼저 받으려고 다투어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짜증스러웠던지 해의 얼굴도 피곤해 보인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스모그를 말끔히 걷어낸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