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누구나 이 날이 오면 감회에 젖어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게 되는데 보람보다는 회한의 마음이 앞서는 것 같다.

별로 이룬 것 없이 한 해를 보내는 것을 아쉬워하며 희망차게 살아보겠다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것도 이 날이 아닌가 싶다.

제야(除夜)에 울려 퍼지는 보신각종은 이래서 의미가 있다.

새해맞이의 벅찬 감동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해마다 31일 자정이 되면 수 많은 인파가 종로거리로 쏟아져 나와 타종과 더불어 환호하며 신년을 맞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80년 이전 통금시절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와 함께 31일에는 통금을 해제해 축제분위기를 북돋웠다.

보신각 종소리는 그 유래가 깊다.

지금은 '희망'을 전하는 현대판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성문을 잠그는 밤 10시(人定)와 성문을 여는 새벽 4시(罷漏)에 종을 쳤다.

보신각종이 송구영신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휴전 이후이며,33번 종을 울리는 것은 파루에서 따왔다고 한다.

33번의 타종은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33천에게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세조 때 주조된 원래의 보신각종(보물 제2호)은 균열이 심해 85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현재의 종은 국민성금을 모아 새로 주조한 것이다.

종소리는 외국에서도 신년을 알리는 전령으로 등장한다.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의 종탑인 빅벤이 밤 12시를 가리키면 모든 교회의 종이 울리고 트라팔가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일제히 '올드 랭 사인'을 합창한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도 새해맞이 광경은 비슷하다.

묵은 해를 보내는 것을 'ring out',새해를 맞는 것을 'ring in'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시련도 많았던 임오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태양이 지는 것은 내일 다시 새롭게 떠오르기 위해서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

못 다한 일과 떨쳐버리기 어려운 미련을 접고 이제 신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