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를 환호하는 물결에 패자의 회한이 묻히며 숨막히는 긴 레이스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패배를 승복하고 눈물로 정계를 은퇴했다. 비방과 폭로도 있었지만 선거판이 원래 그런 거라 생각하면 축제분위기 속에서 정책과 이념의 대결이란 성숙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누군가 민주주의는 '51 대 49'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번에 그렇게 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큰 쟁점이 천도론(遷都論)과 '낡은 정치'나 '부패정권'이 되면서 절실한 주요 이슈 몇 개가 비켜 지나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먼저 소자화(小子化)문제다. 출산율(한 여자가 낳는 아이의 수)이 1.30으로 세계최저 수준이다. 미국이 2.13, 프랑스가 1.89, 세계 최고로 고령화된 일본이 1.33인 것을 보면 충격적이다. 우리 인구는 2020년 5천65만명을 정점으로 2030년에는 5천29만명으로 줄어들고, 노령화율(14세 이하 인구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1백86.3%가 될 것이라 추계하고 있다. 일본족이 일본열도에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일본은 소자화 대책을 21세기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삼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유아보육뿐 아니라 보육원을 졸업한 아동들에 대해 '학동보육(學童保育)' 정책까지 시행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심각한 우려는 보이지 않았고, 보육예산과 육아휴직급여를 확대하는 정도의 공약제시가 고작이었다. 다음 집값 문제다. 서울의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졌던 98년 이후 83.8%나 올라 아파트가격지수가 지난 11월에 171.1이 됐고, 주거비 지출 비중은 63%로 올랐다. 11평짜리 서민아파트가 개포동은 3억원 정도, 상계동은 1억3천만원 정도라니 그동안 7천에서 1억6천만원 가량 오른 셈이다.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그동안 34.2%가 올라 지난 3분기에 2백86만원이니, 허리띠 졸라매고 한달에 소득의 50%를 저축해도 무주택자들은 세상을 많게는 10년 정도 거꾸로 살았다. 이들의 절망에 대해 별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신용불량자문제다. 가계빚이 4백24조원, 가구당 2천9백만원으로 늘어 선진국 수준에 갔다.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개인신용불량자는 2백57만명에 달했다. 갚을 길이 막막해 자살도 살인도 하기에 이르렀다. 제도적으로 미래소득을 현재로 끌어 쓰는 지출구조를 갖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내수위주 경기정책이 빚은 결과다. 옛날에 농가부채와 기업사채는 탕감도 동결도 해주었고, 최근에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은 1백56조원의 공적자금으로 막아 주었는데, 갚을 길이 막막한 서민의 빚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책의 제시가 없었다. 출산율이 줄고 노령화가 가속되면 일할 사람이 없어 경제성장이고 사회보장이고 모두가 어렵다. 집값이 이렇게 오르면 서민은 절망에 빠지고 기업에는 고임금이, 노동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저임금이 돼 과격한 임금투쟁으로 이어진다. 가계파산이 많아지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소비도 줄어 부추겨 놓은 경기도 되돌아간다. 아이를 낳으면 남자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어 돌 때까지 부모가 키우게 하고, 그 다음은 나라가 책임지고 키워 출산율을 1.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출산율 증가를 위한 투자는 사회복지 차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사회전체의 생산력을 높이고 민족 존속을 위한 최우선 투자라 생각된다. 집값을 선진국같이 연소득의 3∼4배 수준으로 떨어뜨려 월급의 30%를 10년 정도 내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서민주택을 공급해 줘야 한다. 어차피 감당할 수 없는 가계빚이라면 살면서 갚도록 해 줘야 한다.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빚을 갚을 때까지는 카드도 은행대출도 못쓰게 하는 조치는 있어야 할 것이지만. 21세기 들어 처음 출범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새 정부에 대해 갖가지 요청과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무엇이 가장 절실하고 21세기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일까를 이코노미스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20,30 세대들의 강렬한 변화의 요구는 아이 키우는 걱정, 집 없는 설움, 갚을 길 없는 빚에 대한 불만이 '낡은 정치'로 불이 붙은게 아닐까. 새 정부 출범에 축하와 기대를 보내면서 장기 중기 단기 하나씩 절실한 화두를 던져본다. 1.30과 171.1과 4백24조! 姜萬洙 <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mskang36@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