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볼링을 좋아한다. 공격과 방어를 하며 싸우는 승패가 있는 경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하는 기록 경기를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운동이라서 더없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와 싸워 이겨야 하는 대결 구도 식의 스포츠가 아니기에 일단 심리적 부담이 없어 좋다. 몇해전 처음 볼링 공을 잡았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옆 사람이 너무 쉽게 공을 던져도 볼은 저 혼자 잘 가서 삼각형 모양 열 개의 핀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에이,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경솔한 몸과 마음을 그대로 싣고 던진 내 공은 십 미터도 채 못 굴러가서 가터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삼각주 모양의 열 개 핀들은 한 치의 요동도 없이 꼿꼿이 서서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흰 이를 다 드러내고 웃고 있는 핀들을 쳐다보며 나는 부끄럽고 화가 났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겸손한 마음 한 자락이 쏙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그날 이후 나는 정식으로 볼링을 배워 이젠 그럭저럭 구력 오 년이 넘었으니 볼 굴러가는 모양과 각도, 볼러의 자세만 보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몇 번 핀이 남을지 대충 알만큼은 되었다. 하나 그때나 지금이나 볼링을 할 때마다 풀 수 없는 물음표 하나가 꼭 나를 따라 다닌다. 분명 스트라이크가 나올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한 데도 전혀 예기치 못한 핀 하나가 눈 말곳말곳 뜨고 살아남아 쓰러진 핀들을 도도하게 내려다보며 빗나간 볼링 공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그건 아마 미처 아무도 보지 못한 볼러의 자만심과 욕심이 볼과 함께 굴러갔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 인생의 볼링 공에 어떤 욕심을 함께 실었을까. 그 폭풍 속에서도 까딱까딱, 무게 중심을 잡는 한 핀을 바라보며 사람 사는 것을 배운다. 남들 쓰러질 때 쓰러지는 것은 겸손을 아는 지혜이다. 하지만 남들 다 쓰러질 때 쓰러지지 않는 것 또한 자존심을 지킨 용기일 것이다. 삶이 때론 지혜롭게, 때론 용기 있게 두 가닥의 씨실과 날실을 잘 맞추어 짜놓은 옷감이라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아직은 무지하고, 교만하고 행동보다 말이 빨라 얼기설기 어설픈 옷감이지만,그래도 가끔은 내가 던진 공에 어떤 사심이 실려 있는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며, 그 사심을 털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스트라이크…. < bezzang081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