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사회에 지진과 같은 충격을 주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중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18일로 출간 40주년을 맞아 러시아 언론의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당시 소련 수상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암묵적인 허락을 받아 문예지 '노비 미르'에 실렸던 이 중편소설은 스탈린 시대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태를 처음으로 알려준작품으로, 그 충격은 수십년에 걸쳐 연쇄폭발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소련 체제의붕괴를 가져왔다. 일간 이즈베스티아의 문학비평가 알렉산드르 아르한겔스키는 "이 작품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며 "우리는 이 소설이 발표된 후 지난 40년동안 노예상태로부터 자유를 찾아 방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반 데니소비치가 없었더라면 90년대 페레스트로이카도, 개혁도 없었을 것이며 우리는 진정한 역사를 되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텔레비전 방송도 이 작품의 의미와 파장을 되새기는 특집을 마련했다. 솔제니친은 몇 년 뒤 발표한 3부작 `수용소 군도'에서 이반 데니소비치가 "철문의 틈새로 자유의 모습을 언뜻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나 철문은 그 후 큰 소리를 내며다시 닫히고 말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정치범들이 이 책을 읽으며 보여준 반응은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강제수용소에서 고통을 겪었던 수십명의 정치범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당시 이 작품이 실렸던 노비 미르는 9만6천부가 발매되자 마자 매진됐으며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인쇄된 85만부 역시 순식간에 동이 났다. 만일 당시에 당국이 허용하기만 했다면 850만명이 책을 샀을 것이라는 훗날의 집계도 있었다. 공산당과 국가보안국(KGB)이 표현의 자유와 읽을 거리를 강력히 통제하던 시절이 작품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시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원고를 읽고나서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가진 걸세"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솔제니친의 전기를 집필한 게오르게스 니바트는 "이 작품은 금기를 깨뜨렸다. 수십년간 침묵에 묻혀 있던 수용소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서방세계가 이를 믿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그 의의를 평가했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는 단순히 짓밟힌 희생자가 아니었다며 "그는 수용소에서 집짓는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자신의 기술에 긍지를 가지고 자기 혼을지켜나갔고 이로 인해 비난받으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노비 미르 편집인 알렉산드르 트바로도프스키의 출간 청원을 흐루시초프가 받아들인 데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이같은 품성이 큰 작용을 했다. 작품이 발표되자 한동안은 당도 갈채를 보냈다. 당시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이작품은 우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진실"이라며 "우리의 문학은 진귀한 재능을 얻었다"고 찬양했다. 그러나 `진실'은 오래 가지 못해 흐루시초프의 해빙무드가 갑자기 끝나고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이끄는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로 또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노비 미르의 현 편집장 안드레이 바실리예프스키는 "나는 지금도 당시의 책을 갖고 있지만 `이반 데니소비치'가 실려있던 7쪽부터 75쪽까지는 검열관의 명령으로 찢겨나갔다"고 말했다. 솔제니친의 작품중 최고이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반 데니소비치는 지금 러시아 전국의 고등학교 졸업반 교재로 쓰이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