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의료기기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던 메디슨의 꿈은 부도로 일단 좌절됐다. 메디슨은 짧은 국내 벤처산업의 역사에서 한 기업의 '영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벤처왕국'을 자처했던 메디슨의 부도는 업계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졌고 많은 기업들이 그 당시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아직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메디슨은 한때 계열사와 관계사 수만 무려 40여개에 달했었다. 이들 기업에 메디슨은 최대주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제품을 발주하는 최대고객인 동시에 메디슨이 세계 의료시장에 구축했던 네트워크망이 이들 자회사의 매출기반이였기 때문이다. 메디슨이 이들 기업에는 자양분과 생존환경을 제공하는 하나의 '생태계'였던 셈이다. 한진호 프로소닉 대표는 "이제 막 젖을 뗀 갓난아기가 이유식이 끊기고 허허벌판에 내팽개쳐졌다"며 당시 메디슨 부도에 따른 충격을 회고했다. 초음파진단기용 탐촉자(Probe) 제조업체인 프로소닉은 메디슨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무려 95%에 달했었다. 메디슨이란 '생태계'를 잃은 과거의 자회사 및 관계사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주력 분야의 선도적인 기술력이 메디슨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제2의 창업과 도약을 준비하게 된 배경이다. 프로소닉은 지난 9월께 3차원 초음파진단기용 탐촉자를 개발, 본격 시판에 나섰다. 탐촉자는 초음파진단기에서 스캐너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으로 현재 전세계에 제조회사가 2~3개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성이 높은 분야다. 프로소닉은 메디슨 부도후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해외시장부터 두드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GE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에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달 초에는 독일의 지멘스로부터 외화자금을 유치, 자본금 5백만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양사의 현물출자까지 감안하면 신설법인의 자산규모는 1천5백만달러에 달한다. 합작법인인 '울트라소닉테크놀러지'는 지멘스와 프로소닉이 각각 51%와 49%의 지분을 보유하며 앞으로 탐촉자를 생산, 전량 지멘스에 공급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지멘스와의 합작은 프로소닉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며 해외시장에 진출할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영상전송시스템(PACS) 전문업체인 메디페이스도 메디슨과의 '인연'을 뒤로 하고 급성장세로 돌아섰다. 이 회사는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형 대학병원의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하며 자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메디페이스가 올 매출목표로 잡은 4백억원은 지난해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회사는 올해 LGCNS KT 등 대기업들과 잇달아 영업 제휴계약을 체결, 안정적인 성장기틀을 마련한데 이어 최근에는 3차원(3D)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쓰리디메드와 흡수합병키로 발표했다. 이선주 메디페이스 대표는 "회사가 갖고 있는 의료마케팅 노하우와 쓰리디메디의 기술력이 합쳐질 경우 최대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디페이스는 주력 제품인 임상진단용 PACS와 진료 및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쓰리디메드 제품을 패키지로 묶어 세계시장을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이밖에 의료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유비케어(대표 김진태)도 점차 메디슨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업체는 메디슨 전환사채(CB)를 2백32억원어치를 보유, 유동성 위기를 겪었으나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부실채권을 전액 손실처리함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외충격파 쇄석기 전문업체인 코메드(대표 이종수)는 자체 대리점망 구축과 해외영업 부서 신설 등으로 재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체외충격파쇄석기와 엑스레이 관련분야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선도적인 기술력이 코메드의 최대 경쟁력으로 꼽힌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