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7,8일 양일간 국회는 의결정족수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20여개 법률안을 무더기로 통과시켜 논란을 빚고 있다. 69건의 법률안과 새해예산안 등 모두 98건의 안건이 이틀 동안 일사천리로 통과되었으나 이중 '농어업인 부채탕감특별조치법'등 20여건의 법안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처리됐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 20여개 법안은 효력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당연 무효로 되어야 할 것인가. 헌법(제49조)은 일반 안건에 대한 국회 의결정족수를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날 본회의장을 지킨 의원은 70여명에 그쳐 정족수 1백37석을 60여석이나 크게 밑돌았다. 헌법 규정대로라면 이들 법안은 당연 무효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국회는 안건을 다시 상정하고 재의결에 부쳐야 할 것이다. 국회측은 당시 회의장밖 복도 등에 대기중이던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동안의 관행에 따라 의결정족수 요건은 충족시킨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 설명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학생이 학교에는 갔지만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와 운동장만 배회하고 돌아왔다면 이를 두고 '출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는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해프닝은 한마디로 우리 국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정기국회 말만 되면 법안들이 충분한 심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의례만 거쳐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이 처리한 법안의 내용은 고사하고 이름이나마 제대로 알고 있는 국회의원이 과연 몇명이나 될지도 의심스런 현실이다. 입법과정의 기본적인 형식요건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양산된 법안들이 우리사회의 법의식을 이토록 흐려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더기 상정에 수박 겉핥기 심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법률에 누가 권위를 부여할 것이며 그것을 지키고 존중할 것인가. 박관용 국회의장은 앞으로는 국회의원별로 출석표를 작성해 유권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런 방법으로 국회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집권당부터가 연이은 내분과 탈당사태를 겪는 등 정치권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모두 헌법기관이다. 어떤 순간에도 본연의 과업 만큼은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