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일곱번째를 맞는 '농업인의 날'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축제분위기는 커녕 유난히도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느낌이다. 대중국 마늘협상파동,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그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쌀문제 등으로 누적된 농민들의 항의집회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농업은 농산물의 국내외 과잉생산과 가격하락으로 농가소득확보가 어려우며,농촌은 청년층의 탈출 및 고령화 급진전으로 활력상실과 지역사회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개방과 산업화에 따른 과도기적 상황이라기보다 도·농이 단절된 발전전략의 귀결이라는 구조적 성격인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의 도·농격차 심화문제는 산업간 지역간 불균형의 차원을 넘어 국가발전 전략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각한 국면에 이른 농업·농촌문제의 개선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쌀을 중심으로 한 식량증산에 농업·농촌정책의 중심을 두어왔다. 그 성과에 힘입어 쌀 자급은 이룩했지만,식생활다양화 물결속에서 심각한 쌀 과잉을 맞고 있다. 농가경제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쌀 소득이 농업소득의 54%, 농가소득의 25%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촌경제의 쌀 내지 농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불가피하다. 즉 농업 이외의 다양한 산업과 고용기회를 창출하고,농민 이외의 다양한 주민구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정책수단이 강구돼야 한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경우에도 농촌경제에서 농업 비중은 매우 낮다. 또 정책방향도 농업이라는 산업정책으로부터 농촌이라는 지역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는 바,그 단적인 예를 EU의 전통적인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CAP) 대신 유럽공동농업 농촌정책(Common Agricultural and Rural Policy for Europe·CARPE)으로의 전환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그 동안 '집적의 이익'추구라는 논리아래 인구의 90%를 국토의 10%에 불과한 수도권과 공단도시를 중심으로 집중시켜온 도시편중정책이 주택 교통 환경 등 여러 측면의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킬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흐름에 따른 국가발전전략의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점을 직시하고,도·농이 단절된 기형적 발전으로부터 도·농이 연계 통합된 균형있는 발전으로 궤도수정을 서둘러야 할 때다. 그러면 농업발전은 어떠한 방향에서 추구돼야 할 것인가. 토지이용형(型) 곡물농업분야는 규모화 전문화를 위한 여건조성에 정책지원을 집중해나가야 하며,21세기 농업발전의 전제조건을 이루는 소비자를 위한 식품안전성 확보와 현재 및 미래세대의 전국민을 위한 환경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농업시스템 구축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한국농업도 이제는 자급도에만 매달리는 폐쇄적인 사고(思考)에서 벗어나 국제분업,특히 동북아 역내농업의 산업내 분업체계 속에서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생산부문에 특화하는 등 개방경제흐름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중국이 작년의 WTO가입에 있어 국내농업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쌀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의 관세화를 수용하고 농업의 국제화에 적극 대응하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국토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지역의 녹색공간을 국가발전전략의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정면 도전하지 않고서는 농업·농촌문제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이를 위해 농촌지역토지의 계획적 이용체계확립,주민 주도 상향식 개발방식의 도입,도·농연계생활권 개발,지역특성에 맞는 산업 군집(群集·cluster)의 육성,다양한 도·농교류확대프로그램의 추진 등이 '농촌지역가치의 재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부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농촌개발정책의 총괄조정기능의 강화다. 국제적으로 볼 때도 영국 등 선진제국의 농업정책 담당부처가 농촌발전정책의 총괄부처로 그 조직과 업무영역이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