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생은 물론 석.박사학위 소지자들까지 최악의 구직난을 겪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은데 원인이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취업 재수생' '3수생'들의 수가 매년 쌓인데다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에 진학했던 사람들까지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력 수요처인 기업들이 경기 불투명을 이유로 채용 인원을 늘리는데 인색한 것도 취업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 넘쳐 나는 구직자 취업 전문 업체 (주)스카우트에 따르면 자사 사이트에 구직을 의뢰해 놓고 있는 누적 회원수는 7일 현재 대졸 이상만 96만3천5백93명에 이른다. 이 중 석사학위 소지자가 5.03%인 4만8천5백명, 박사는 0.67%인 6천5백4명이다. 최근 3개월 사이에 등록한 대졸 이상 구직자만도 5만7천2백6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석사는 4천1백12명으로 7.3%, 박사는 7백98명으로 1.5%다. 고학력자들의 구직이 눈에 띄게 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스카우트 관계자는 "이들은 취업 희망 기업의 규모나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학벌, 자격증 인플레도 한몫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배출된 박사학위 취득자는 모두 7천7백77명. 특수대학원을 제외한 일반대학원의 석사학위 취득자는 2만6천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미국 경기 침체 여파로 현지에서 자리잡지 못한 MBA(경영학 석사) 등도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고학력이 더 이상 입사 보증수표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눈물 흘리고 있다. 해마다 합격자가 늘고 있는 공인회계사 등 전문 자격증 소지자도 마찬가지 신세. 공인회계사 합격자들이 지난 4일 실무수습 보장을 요구하며 연수 거부를 선언하는 일까지 일어날 정도로 자격증 인플레가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해상의 경우를 보면 70여명을 뽑는 하반기 공채에 1만1천8백50명이 지원했다. 이중에는 MBA 소지자 27명, 공인회계사 87명, AICPA 자격증 소지자 1백12명, 계리인 9명, 손해사정인 17명, 세무사 13명 등이 포함됐다. 기업체마다 석.박사 이상 지원자가 평균 10% 이상에 달하고 현대.기아자동차, LGCNS, 팬택&큐리텔 등의 경우는 석.박사 지원자가 각각 3천명을 넘었다. ◆ 기업들의 고학력 기피 현대건설은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최근 각 대학에 우수 학생을 추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되도록이면 학사 위주로 추천해 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장 공사나 영업이 위주인 건설사에서 고학력은 필요치 않다"며 "연봉이나 인력 운용 문제 등으로 인해 학사 위주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석사이상 지원자 82명 가운데 1명만 뽑았고 LG전선은 1백35명중 7명만 채용했다. 4백명 모집에 3만여명이 지원한 롯데그룹의 경우 10%가 넘는 3천5백여명이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들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학력이 석사 이상이더라도 보수에서 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도 "석.박사의 경우 관련 전공일 때는 경력 2년을 계산해 주지만 비관련 전공이라면 플러스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IT(정보기술) 전자, 자동차나 일부 금융 업종의 경우는 고학력 소지자들이 몰리는 것을 환영하겠지만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은 이들을 우대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 취업문 어떻게 뚫을까 헤드헌팅 업체인 (주)엔터웨이의 박운영 이사는 "해외 MBA나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취업 보증수표이던 시대는 끝났다"며 "철저한 수요예측과 경력관리를 통해 전문성을 키운 고학력 구직자만이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원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교수는 "석.박사학위 소지자들은 아무 회사에나 원서를 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산업부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