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국적으로 치뤄진 제13회 공인중개사 시험이 일부 고사장에서 시험지 부족으로 파행을 겪었다. 서울과 수원지역 10여곳의 시험장에서 부동산학개론과 민법 시험 문제지가 응시생보다 부족해 수험생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고 일부는 시험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 송파공고, 인천전자공고 등에서 문제지가 부족하자 시험을 주관한 한국산업인력공단측은 뒤늦게 문제지를 복사해 배포, 응시생들이 1시간 가량 늦게 시험을 치렀다. 일부 응시생은 공단측에 항의하며 재시험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 송파공고의 경우 9백58명의 응시자중 72명이 문제지를 제 시간에 받지 못해 별도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수원 동성여중 수일중 등에서도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 뒤늦게 복사해 배포된 문제지의 인쇄상태가 나빠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일부 수험생들은 산업인력공단 경기지역본부가 있는 상공회의소 건물로 몰려가 항의하기도 했다. 산업인력공단측은 "과거 시험의 결시율을 감안해 고사장별로 정원의 95%에 해당하는 문제지를 준비했으나 실제 응시율이 최고 98%에 달하면서 문제지가 모자랐다"고 해명했다. 응시생들은 "명색이 국가 주관 시험인데 문제지가 모자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진데 비춰 당국의 준비는 소홀하기 짝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내 자격증시험사상 최대 응시인원인 19만9천6백32명(지원자 26만여명중 75.05% 응시)이 전국 2백62개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다. 응시생들은 60세가 넘은 노인부터 양복 차림의 중년 직장인, 부업을 준비중인 주부,젊은 대학생 등 어느 자격시험보다 다양했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는 국민적 자격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응시계층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중학교에서 부인과 함께 시험을 친 양영남씨(42.성동구 하왕십리2동)는 "건축업에 종사해 왔는데 안정된 자영업을 갖고 싶어 집사람과 같이 준비했다"며 "실패해도 내년에 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1시30분 시험이 끝난후 일부 수험생들은 난이도 등에 대해 얘기하며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명예퇴직 등으로 당장 개업할 태세가 돼있는 이른바 '생계형 수험생'들은 시험이 너무 어렵다며 울상을 지었다. 넉달전 회사를 그만뒀다는 최봉씨(47.송파구 송파동)는 "너무 어려워 떨어질 것 같다"며 "정부가 공인중개사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험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출제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놨다. 교직을 정년퇴직했다는 심규식씨(68.동작구 사당동)는 "사법시험 1차도 아닌데 젊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단순암기식 문제들만 출제됐다"며 "중년 직장인이나 퇴직자들을 감안한 출제와 평가방법이 아쉽다"고 주장했다. 반면 젊은 학생들은 지원자가 너무 많은게 불만이었다. 송선미씨(29.무직)는 "대학 졸업후 벌써 3년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지원자가 많이 몰리면 자격증을 따더라도 문제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시험을 주관한 산업인력공단의 이원박 국장은 "응시자가 너무 많아 시험 관리.감독 준비에 진땀을 뺐다"면서 "예년 시험을 고려해 출제했기 때문에 난이도에 대한 불만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