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법당에 봉안된 불상과 보살상이 모처럼 도심공간으로 외출한다. 행선지는 미술전시장. 이들 불상과 보살상은 경배의 대상이라기보다 예술작품으로서 잠시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불교문화산업기획단(이사장 도후 스님) 주최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아름다움과 깨달음-한국 근현대미술에 나타난 불교사상'전. 17일부터 28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20세기 이후 근현대 불교미술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출품작들은 서울전 이후 경주(11월 2-17일), 속초(11월 22-12월 1일), 여수(12월 초)로 순회전에 나선다. 근현대 불교미술품으로 기획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획자인 윤범모 경원대 교수는 "우리 전통미술의 핵심인 불교였지만 근현대 작품으로 꾸며진 전시회는 놀랍게도 그간 한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번 전시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출품자는 채용신, 고희동, 정종여, 김복진, 오지호, 박생광 등 작고작가 14명과 김선두, 이왈종, 전혁림, 황주리씨 등 생존작가 27명. 관조 스님도 사진작가 자격으로 작품을 낸다. 전시작은 회화, 조각 등 분야에서 72점에 이른다. 압권은 김복진의 '정혜사 관음보살좌상'(1939년작)과 정종여의 '의곡사 여래좌상'(1938년), 오지호의 '아미타후불탱화'(1954년)라고 할 수 있다. 이중 충남 예산 정혜사의 관음보살좌상은 김복진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져 화제가 됐다. 석고 재료의 이 보살상은 수려한 자태와 온화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김복진의 유존작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조각은 이 보살상이 유일하다. 정종여가 남긴 여래좌상은 경남 진주 의곡사에 봉안된 괘불이다. 비단채색으로 높이는 6.5m. 붉은 가사를 입고 연꽃좌대에 앉은 이 석가모니 불상은 수묵화 필치의유려한 선을 특징으로 한다. 월북작가인 그가 불교작품을 남겼다는 것도 이채롭다. 오지호의 아미타후불탱화는 유화물감으로 제작돼 전통의 불화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소장처는 광주광역시 무등산의 원효사. 아미타본존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보살상들이 나란히 시립하고 있으며 색채는 전통의 오방색을 이용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그린 '인봉 선사 초상'과 조각가 권진규가 남긴 테라코타 작품 '춘엽 비구니', 재일교포작가 전화황의 유화 '백제관음'도 주목되는 작품들. 이만익은 미륵반가사유상과 달밤의 풍경을 담은 '월인천강'을 내놓고,전혁림은 사찰 이미지를 청색조로 표현한 추상화 '사원'을 출품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관음보살좌상과 여래좌상을 전시 개막일인 17일 하루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최측은 "사찰에 봉안된 이 불상과 보살상은 신앙의 대상인 만큼 장기간 외부에서 전시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이들 작품은 서울 나들이에 앞서 별도의 이운의식을 사찰에서 가진 뒤 산문을 나서게 된다. 윤범모 교수는 "불교사상을 기저로 제작한 현대미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 대강의 윤곽이나마 설정한다는 데 이번 전시의 일차적 의의가 있다"면서 "이를 계기로 불교미술의 현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시 부대행사인 특별강연회는 26일 오후 2시 가나아트센터 아카데미홀에서 열릴 예정. 이 자리에는 장충식 동국대박물관장, 최태만 서울산업대 교수 등이 나와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 720-1020.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