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미국 여론은 전쟁파와 반전파로 나뉘어 있다. 이중 반전파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라크공격에 반대한다. 하나는 중동 정부와 국민들이 그 어떤 문제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공격이 성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더라도 중동지역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반전론자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전에 먼저 이-팔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의 폭탄테러를 조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팔사태의 평화적 해결은 난망하다. 후세인 정권 붕괴시 중동정세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독재자 후세인이 제거돼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설 경우 대부분이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 중동정부들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국민들이 이라크와 같은 민주주의 정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동 각국 지도자들은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이라크에 완전한 민주주의 정부 대신 친미성향의 독재정권이 수립되길 바란다. 중동지역은 지금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친미 정부에 반미 성향의 국민을 가진 국가와 반미 정부에 친미 성향의 국민을 가진 국가다. 두 그룹의 가장 대표적인 국가는 각각 이라크와 이란이다. 작년 9·11테러 직후 이란의 대도시들에서는 당국의 저지에도 불구하고,수만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행진을 했다. 반면에 이라크 등 다른 중동지역 국민들은 9·11테러사태에 환호했다.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규정한 국가들이 붕괴될 때는 이들 나라 도시들의 축하행렬은 작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정권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았을 때보다 더 화려할 것이다. 정부 및 체제전복시에는 갖가지 의문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과연 어떤 정부가 들어설 것이며,주변국가들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것 등이다. 대개 체제변화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이-팔사태 해결 후 중동지역내 한 정권이 바뀌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순서,즉 중동지역내 한 정권이 바뀐 후 이-팔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먼저 전쟁을 일으키는 법은 없다. 민주주의 정부는 국민에 의한 정부이므로 국민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극히 일부 예외는 있지만,일반 국민은 전쟁보다 평화를 더 좋아한다. 반면에 독재국가들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과거 추축국(Axis)들에 의해 시작된 세계대전은 추축국들의 패배로 종료됐다. 소련이 시작한 냉전도 소련의 붕괴로 마무리됐다. 오늘날 중동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독재자들은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들은 국민억압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갈등과 분쟁을 조장한다. 추축국과 소련의 예에서 보듯이 참된 평화는 당사국들의 패배나 붕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라크와 중동에도 참된 평화가 도래하려면 후세인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 정리=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 ◇이 글은 미국 프린스턴대 버나드 루이스 중동학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 'Time for Toppling'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