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우리 위상을 한껏 드높인 월드컵 축구와 엄청난 태풍피해로 희비가 교차한 한해였다. 또 연거푸 치르는 선거의 해이기도 하다. 아시안게임이 시작됐고,12월엔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우리는 누구나 선거가 부정 비방 연고주의 등 네거티브 전략보다,차별적 통치철학과 역량 그리고 정책대결 등 포지티브 전략으로 치러지기를 바란다. 특히 후보에게는 시대를 꿰뚫는 통치철학 도덕성 정치역량과 경륜을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의 50년 정치사는 진보를 외치면서도 현실수용에 인색하다. 오직 대결적 정권욕으로 정치하고 정책을 개발한다. 따라서 정치의 중추원리인 '갈등 조정력'은 권력투쟁 속에 묻히고,정책은 정보교류 속도가 빨라지고 지적활동이 보편화되면서 정당과 후보간 차별성 없이 획일화되고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심각한 것은,'정책 내용보다 정치실종이라고 비판받는 정치의 갈등 조정력 상실'이다. 선거에서는 정당의 갈등 조정력 여부를 검증하거나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 조정력을 유추할 수 있는 정치양태를 중시하고,최근의 우리정치가 정략으로 일관되는 것을 우려하며 정치를 외면·혐오한다. 왜냐하면 우리사회는 K 마르크스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본 '총체성 통합원리'에 의해 지배되기보다, D 벨의 관점처럼 정치 경제 문화영역이 각기 상충성을 지니는 중추원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어느 한 영역도 소홀해서는 안정과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 경제의 중추원리는 '경쟁을 통해 기능적 합리성, 즉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얼마만큼 어떤 방법과 과정으로 생산 처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철저히 효율성이다. 반대로 문화의 중추원리는 '자아의 고양 및 실현'이다. 인간 스스로의 가치인식과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해 삶의 질과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와 문화영역활동에서는 개인이나 집단간의 차별성 야기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와 문화의 중추원리추구 과정에서 시장참가불능자,예컨대 폐질·불구·노령·미성년자 등은 경쟁참가 기회를 잃고 자아를 상실하기 쉽다. 그런 개인·집단은 경쟁적 이해관계 실현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는다. 그래서 사회구성원과 집단에게 경제와 문화영역에서 소외되기 쉬운 평등권을 회복시키고,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정치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법 앞의 평등·기회균등·권리평등은 제도적 장치이고,현실적으로 발생하는 갈등 조정이 정치활동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난 정치사에서 보면 평등권 등의 보장을 포함한 제도적 장치마련에는 비교적 높은 관심을 두었으나,정치역량을 보여 줄 갈등 조정에는 거의 무관심하거나 정쟁수단으로 오히려 증폭시키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다. 이제 월드컵 때 보여준 높은 수준의 성숙된 국민의지와 행동을 밑받침하기 위해서라도,이번 대선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갈등 조정력 발휘를 통한 정치력을 회복해 주었으면 한다. 다만 어떤 정책이든 완전중립적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정(正)의 편익을 준다고 해도,대개는 어떤 개인 혹은 집단의 희생을 수반하는 갈등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책개발과 시행이 힘들기도 하지만,정책공약에 수반하는 갈등 조정의 정치력 발휘가 절실한 것이다. 그대신 사회의 불안정적 발전이나 정치의 조정력 불충분성을 극복하는 데 드는 정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민주의식과 자기실현 및 책임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사실 이 때문에 '사회경제 전체의 상향운동'을 발전으로 정의하기도 하나,민주의식과 자기실현을 위한 갈등의 자율적 조정은 시장실패 요인을 제외하고는 자유경쟁에 의해서 우열을 가리는 시장제도 발전 밖에 없다. 그런데도 시장을 죄악시하고 믿지 않으며 외면함으로써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시장의 동시 발전이 필요하고,이를 정치의 높은 갈등 조정력으로 밑받침해야 한다. 필자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가 갈등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당리당략만 있고 정치가 없다'는 비판과 함께 야기된 정치무관심과 혐오감이 말끔히 씻어지기를 기대한다. chchon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