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금강산여관 북측 이산가족들의 객실에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들의 개별상봉은 그다지 극적이지는 않았다. 북측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북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준 것이라는 선물을 내놓았다. 취재진에게 상봉장면이 공개된 가족의 경우, 남쪽 가족들이 마련한 선물을 꺼내기 전에 북측 안내원들이 남측 취재진을 방에서 내보냈다. ○...지난 1944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 재학중 의용군으로 징집된 유동식(76)씨는 남동생 판식, 여동생 정임, 외사촌 오상균씨와 해후했다. 김책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교수로 재직하다 2년전 퇴직한 동식씨가 "장군께서 여행도 보내주시고 혜택받고 잘 살았다"고 말하는 동안 다른 가족들은 그저 듣기만 했다. 정임씨는 "오빠가 북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잘됐다"며 "소식을 몰라 궁금했는데 이제 만났으니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재인(66)씨는 남쪽 가족들이 개별 상봉장으로 들어서자 "금강산을 본 감상이 어떠냐"고 인사했고 남의 형 재진씨는 "아침에 너무 상쾌해서 좋았다"고 답했다. 재인씨가 자신이 가져온 타계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에 함께 절하자고 제의해 남측 가족들은 이에 따랐다. 이어 재인씨는 전날 단체 상봉장에서 보여준,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평양 제1중학교의 실내 수영장 앞에서 김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이며 "위대한 김일성 주석께서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만큼 모든 학생들이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지어주신 수영장"이라고 밝혔다. 재인씨는 자신의 학교에 대해 "제1외국어는 영어와 러시아어이고 제2외국어는 중국어와 일본어"라고 소개했다. 형 재진씨는 "어제 내가 부탁했던 (북에서 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일(忌日), 북쪽 조카들의 이름과 사진, 현주소 등을 준비했느냐"고 묻고 "혹시라도 나중에 만나면 알아볼 수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농사를 짓다 전쟁중 의용군에 입대해 가족들과 헤어지게 됐다고 말한 리기탁(74)씨는 남쪽 가족들을 만나 "이곳에서 군(郡)인민위원회 상업부장을 30년간 복무하는 등 잘 지냈다"고 안부를 전했다. 그러나 리씨는 남측의 국립묘지에 위패가 모셔졌던 사람이다. 리씨는 "이곳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뤄 4남매를 뒀다"며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남측 아내의 손을 잡았다. 남측 아내 조금래(73)씨가 전날 단체 상봉장에서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리씨는 "노친네가 뚱해서... 성질이 아직도 있단 말이야"라며 멋쩍어 했다. ○...전쟁중 의용군으로 북에 온 것으로 알려진 류철권(69)씨는 남측 3남매를 만난 자리에서 북측 안내원과 기자들을 의식한 듯 시종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류씨는 "수령 품에 안겨 6남매를 잘 키웠다"며 "전쟁 때 북으로 온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류씨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상봉행사를 배려해 준 선물 명세표를 내보이며 "장군님 덕택에 50년만에 형제 자매를 만나게 됐다"면서 "남측 기자들은 현실을 똑바로 사실주의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측의 누나 처녀(90)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을 만난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모두 건강하면 됐다"고 눈물을 훔쳤다. 철권씨는 도자기, 책상보, 술 4병, 담배 등을 남측 가족들에게 전하며 김 위원장께서 특별히 준 것이니 잘 간직하라고 말했다. 0...양복 상의에 훈장 10개를 달고 나온 북측의 리진우(77)씨는 "반세기동안 못만난 가족을 이제야 보니 무어라 말할 수 없다"고 감회를 밝힌 뒤, 미리 준비한 도자기와 들쭉술, 인삼곡주가 든 선물 상자를 열어보였다. 남쪽의 아내 김기영(76)씨는 "죽은 줄 알고 2년전까지 제사를 지냈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니 고맙다"면서도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남측의 맏아들 상호(56)씨가 남쪽 가족들의 사진을 꺼내 보이자, 아버지 리씨는"이곳에서 재혼해 6남매를 두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0...아들과 딸, 동생을 만난 북측의 조흥식(75)씨. 큰아들 찬주(52)씨와 딸 혜숙(53)씨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52년만에 큰절을 드립니다"라며 절을 하자 조씨는 어색한 듯 "무슨 절이냐"며 맞절을 했다. 이어 조씨는 "50여년 동안 한번 안아보지 못했던 아들, 딸을 만났으니, 이제 실컷 좀 안아보자"며 찬주씨와 혜숙씨의 어깨를 감쌌다. 조씨는 "남한에서는 대학을 꿈도 꾸질 못했는데 북에서 장군님의 은혜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등 교원으로 훈장까지 여러 개 탔다"고 자랑했다. 남쪽 동생 명식(73)씨가 "어제 가족들을 처음 만나 제대로 잠을 잤느냐"고 묻자 조씨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만나니 기뻐서 잠이 더 잘왔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0...북측의 조남룡(72)씨가 남쪽의 동생 남석(70)씨에게 "지난밤 너무 설레다보니까 잠도 제대로 못잤다"고 하자, 또다른 동생 남철(68)씨는 "급하게 나오느라 서울에서 가져온 선물도 (숙소에 두고)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룡씨는 18세때 인민군에 자원 입대해 가족들과 헤어졌으며, 최근까지 평양시 상원군에 있는 전산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고 설명했다. 남룡씨는 선물로 술을 준비했다며 "추석때 아버지 제사상에 꼭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0...남측의 김순규(93.여)씨는 귀가 어두워 말을 잘 알아들지 못하지만 반세기만에 만난 큰딸 최순옥(72)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였다. 북측 기자가 "상봉을 축하한다"고 하자, 김씨는 "딸 보러 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남북한 취재진에게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어머니 김씨에게 "장군님이 주었다"며 옷감을 선물했다. 이어 최씨는 사촌동생 태규(65)씨에게 인삼곡주를, 동생 헌규(55), 록규(52), 선희(61.여)에게는 들쭉술과 담배를 건넸다. 0...북측의 김택중(70)씨는 이날 자신을 만나러온 남의 여동생 승자(65), 달자(57)씨를 숙소인 금강산 여관 11층 12호에서 포옹하며 반갑게 맞았다. 택중씨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일일이 풀어 동생들의 손에 쥐여주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김씨가 준비한 선물에는 `김일성화'가 들어 있는 크리스털 볼과 평양의 유명한 미술가가 그렸다는 금강산 풍경화 한 점도 포함돼 있었다. 택중씨는 겉 포장지에 "보고싶은 부모님께 올립니다. 백남기 올림"이라고 쓴 술한병을 동생에게 쥐여주며 자신의 북쪽 친척이 남쪽의 가족을 찾아달라며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중씨는 18세때 인민군에 입대했고 북한에서 원산농업대학을 수석졸업하고 중앙과학기술통보사 기자생활을 36년째 계속해오고 있다고 했으며 외국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직업이라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등 4개국어를 한다고 자랑했다.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