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1주년을 사흘 앞둔 미국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다. 언론을 통해 비쳐지는 당시의 처참했던 사고 현장과,희생자 유가족들의 눈물어린 회고로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기업들도 9·11테러의 아픔을 함께 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11일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테러 이후 대폭 강화된 각종 보안규제로 속을 끓이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마련된 규제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늘어난 비용이 기업들에는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도소매업자들은 외국 항구에서 짐 싣기 24시간 전 화물목록을 세관에 알리도록 한 조치에 난감해하고 있다. 미국 항구에 닿기 전 제출하면 됐던 화물명세서를 미리 내게 한 건 테러범들이 위험물질을 은닉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하지만 해당 기업들은 화물명세서를 미리 낼 경우 경쟁업체에 정보가 새나가거나,절도 당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외국 금융사들이 미국에 계좌를 열어 돈세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무부가 새로 도입한 규제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고객 신분이나 거래내역을 얼마나 상세히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화학회사들도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다. 상원 환경위원회의 존 코자인 의원(민주,뉴저지)은 화학회사들에 대해 18개월내 새 보안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다우케미칼 듀폰 엑슨모빌 등은 이 법안이 기업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화물운송 금융 원자력발전 음식가공 화학약품제조 등 사회 전반의 주요 하부구조는 90% 이상을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제2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9·11테러의 아픔속에 침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기업들이 대폭 강화된 테러방지조치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업들은 9·11테러 전 각종 보안에 쏟은 비용이 연간 5백50억달러에서 테러 이후 최고 2배가 늘어나 속을 끓이고 있다. '애국'과 '수익'사이에서 미국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