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10월 초를 목표로 신당 창당작업에 들어갔다. 신당 창당은 분명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중차대한 일이다. 그것은 기업가가 이제까지 해온 사업을 포기하고 신종 사업을 하겠다는 것과 유사하다.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 및 8·8 재·보선에서의 참패에 대한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기존의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당으로 태어나려고 했을까 하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신당 창당이 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환골탈태의 모습보다,어떻게든 국면을 전환해 보겠다는 정략적 움직임으로 비추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당으로서,또 4년반 동안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으로서 군림해온 민주당에 걸맞은 당당하고 떳떳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새천년'을 기약하고 나온 정당이 몇년도 안돼 자기파괴를 해야 한다면,거기에는 깊고 그윽한 사연이 있을 텐데,선(先)은 이렇고 후(後)는 이렇다는 명백한 공적 해명이 없어 답답하다. 왜 그 동안 민심과 표심(票心)이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대한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만일 신당 창당이 그 동안 민주당이 저지른 잘못과 과오를 감추기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같은 움직임이라면 정치도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민주사회의 정당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지고(至高)의 목표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그렇다고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2월 대선을 위한 득표 극대화의 전략이라고 해도 합리적이고 순리적인 기준에 맞추어 추진돼야지,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승리를 겨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어려움은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대,하물며 집권여당이 자신의 잘못을 만천하에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설사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도 막상 그 잘못을 인정하면,그걸 물고늘어지는 게 세상 인심이다보니 만신창이가 될 것이 두렵고,또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얻으리라는 전략적 사고도 하다보니,자신이 이제까지 해온 일에 대한 냉엄한 결산과 자아비판에 인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치에도 신의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가끔 축구 해설자가 선수들의 움직임을 논평하면서 "너무 정직하게 볼을 찼군요"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서 선수들의 '정직'은 오히려 약점으로 느껴진다. 정치는 어떤가? 물론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국민들에게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하며 정치에 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어떤 정책적 실수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여건이 맞지 않아 일어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선승리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처신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현실,이회창 후보의 5대 의혹 규명공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민주당의 실패가 '자업자득'임을 말해준다. 집권층의 부정·비리 게이트가 만천하에 공개됐을 때도 이를 한사코 감쌌을 뿐더러,과거 한나라당은 더했다는,희한한 '부정부패 차별론'을 내세웠던 위선과 어거지 논리가 반민주당 정서와 민심의 핵심이다. 이러한 민심이반 사태에 대해 민주당의 신당 창당이 그것을 피해가려는 비겁한 행동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유감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중요한 기능은 이른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일이다. 시장실패는 시장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오염물질 방류로 강이 4급수로 전락하고,가짜 식품과 농약 친 식품이 판치는 것 모두가 시장실패다. 이런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것이 정치라면,정치행위자들은 시장행위자들보다 더욱 더 정직해야 하고 책임의식에 투철해야 하며 정략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연 이번 민주당의 신당 창당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을 상기시키는 행위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 지켜볼 일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