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를 이야기하면서 외국인투자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항상 뉴스의 한 가운데 서있다. 종합주가지수가 600대로 내려앉은 지난 26일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외국인은 3천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내다팔면서 그들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얼마전 한 외국계 증권사가 내놓은 삼성전자에 대한 분석보고서 한 장이 한국 증시를 뒤흔들었다.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낮춘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팔았다. 이 회사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종합주가지수도 20포인트 이상 추락했다. 국내 기관이나 개인들은 외국인이 좋아하는 종목을 따라가는 전략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주식 사대주의'라는 지적이 나왔을까. 이 또한 한국 증시에서의 외국인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외국인에게 휘둘리는 한국 증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증시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지 10년이 지났다. 외국인은 현재 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고 하루 거래량의 15% 정도를 움직이고 있다. 시장개방 이후 한국증시는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른바 '저PER(주가수익비율)주' 개념을 도입한 것도 외국인이었다. 국내에 첫선을 보인 1994년 당시 국내 기관조차 PER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PER는 현재 주가를 주당 순이익(EPS)으로 나눈 수치.외국인은 이 잣대를 십분 활용,저평가된 우량주를 대거 사들였고 그 결과 대박을 터뜨렸다. 주가가 2배 이상 급등한 종목이 속출했기 때문.태광산업이 이때 빛을 본 대표적인 종목이다. ROE(자기자본 이익률)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비 지출 이전 이익) 등 각종 투자지표도 외국인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다. 외국인은 한국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에도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 주식을 갖고 있는 우량기업에 이상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심지어 보유 주식을 대거 매각,주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직접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인은 한국 증시의 성장 발전에 분명 기여했다. 그럼에도 외국인을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이들이 시장 안팎에 많다. 누구나 인정하는 '큰 손'임에는 분명하지만 '위기의 시장'을 지켜줄 '맏형'노릇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분식회계 스캔들로 야기된 미국시장의 불안감이 국내로 증폭돼 전달되면서 한국증시의 안전판 설치문제가 보다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의 대표 기업이 사상최대의 실적을 구가하고 있지만 시장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미국시장 불투명으로 외국인이 투자자금을 회수해가면서 한국시장의 수요기반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조화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지만 영향력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장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 방안 중 하나가 국내 기관을 키워야 한다는 것.잃어버렸던 안전판 역할을 되찾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다행히 기관의 재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 최대기관인 국민연금은 외부전문기관에 운용자금을 맡기는 아웃소싱(외주) 기법을 적극 활용,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자금운용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다른 연기금들을 자극하고 있다. 투신권도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바로 지금이 국내 기관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투자자들의 '믿음'을 얻는 튼튼한 기관들이 언제쯤 한국증시에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song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