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또 하나의 중독 .. 송은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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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huy91@hanmail.net
'자본주의는 인간의 외로움을 흡수하며 확장되는 메커니즘인가보다'는 거창한 주제를 논한건,작년에 친구와 홈쇼핑 중독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어머니가 홈쇼핑 채널을 통해 물건을 수시로 구입하신다고,그 바람에 죽을 맛이라고 친구가 푸념하면서 시작됐던 이야기였다.
주문은 어머니가 하시고 결제는 세 딸이 나워서 하는데 그 대금이 자그마치 1백만원에 이른 적도 있는 모양이었다.
중년에 남편을 여읜 뒤 자식들 키워 내보내고 혼자 있는데 그도 못하고 사느냐고 어머니가 서러워하시기 때문에 말릴 수도 없다고 했다.
어머니 흉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에게 맞장구를 치면서 나는 내심 내 어머니가 홈쇼핑 채널에 노출돼 있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더랬다.
내 어머니가 친구어머니만큼 외로운 처지는 아닌 거라고,내 무능력과 불효에 대한 자위도 했다.
그랬는데 그 일이 남 얘기가 아닌게 돼버렸다.
잠은 안 오고 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멍하니 TV를 보던 새벽 2시.
이 시각에도 정말 주문을 받을까?
순전히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탐험을 나선 듯도 싶었다.
쭈뼛쭈뼛,쉰 목소리 가다듬어 가며 수화기를 들었더니 봄날 햇살 같은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는가.
내가 주문한 물건을 6개월 무이자 할부로 배달해 주겠다는 안내원은 얼마나 친절하던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맞아,나한테 저게 필요했어!
어떻게 저런 물건을 생각해 냈을까?
중소기업을 살려야지 그럼.
그래 저건 엄마한테 딱 맞겠어.
자본주의와 외로움의 상관관계 따위는 한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채 감탄하며 전화를 해대는 사이에,프라이팬들이 재활용 고철이 되어 한꺼번에 쓸려 나갔고 10여년 묵었으나 멀쩡히 잘 쓰던 청소기가 폐품이 되어 베란다로 물러났다.
어머니한테 보낸 옷은 스타일이 안 맞는다고 퇴박을 맞았다.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 아주 유용해 보이는 품목이 또 한가지 떴다.
사실은 한달 전쯤에도 한참을 겨눠보다 외면했던 물건인데 다시 눈에 띈 것이다.
아침 밥 지으려다 쇼핑을 하는 건 모양새가 우습지 싶어 돌아서긴 했는데,세번째에도 못 본 체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