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개혁의 전위대.' 올해 22세가 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성격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 같다. 공정위는 지난 81년 설립 이후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및 '팽창 의욕'을 막는데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 때문에 전.현직 공정위 사람들은 공정위 역사를 '기업발전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에 대한 논란은 많다. 공정위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말 외환위기 직후. 공정위는 '문어발식 경영'으로 외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던 대기업들을 상대로 '공정거래법(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라는 칼을 본격적으로 빼들었다. 이남기 현 위원장은 그 작업을 진두지휘한 주인공. 그는 공정위 설립때부터 함께 해온 전윤철 위원장(현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연일 머리를 맞대며 빈사 지경에 빠진 '공룡'의 수술에 나섰다. 그는 2000년 8월 전 부총리로부터 위원장직을 넘겨받은 뒤 무섭게(?) 변한다. 온화하고 차분한 성격에다 평소 학구적인 분위기와 달리 이 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재계와 '일전'을 불사했다. 그의 강공 일변도 정책구사에 전임자였던 전 부총리조차 "이제는 내 말도 안듣는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그는 30대 그룹의 경제력 집중과 이로 인한 동반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 상호출자금지, 상호채무보증금지, 출자총액제한 등 '규제의 칼날'을 세우는 한편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조사에도 박차를 가했다. 공정위와 재계가 수시로 부딪치면서 양측 사이에 두터운 한랭전선이 형성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 수술의 실무는 독점국과 조사국에서 앞장서고 있다. 침착하고 주도면밀하다는 평을 듣는 조학국 사무처장을 비롯 강대형 경쟁국장과 주요 국장을 두루 거친 오성환 상임위원 등이 독점국장을 맡으면서 전면에 나섰다. 그 결과 계열사간 상호채무보증이 사라지는 등 동반부실의 외형적인 고리는 끊겼다. 4대 그룹만 해도 외환위기 전 3백30%였던 부채비율이 2000년 이후 2백% 아래로 떨어졌다. 구체적인 불공정 행위를 파고드는 조사국에서는 97년 재정경제부에서 자리를 옮긴 박상조 상임위원과 김병배 주미 대사관 경쟁협력관, 이한억 상임위원 등이 차례로 국장직을 맡으면서 대기업들의 두터운 장부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조사국은 지난 98년 이후 4년동안 총 3백19개 회사가 2백72개 계열사에 29조7천30억원 규모를 부당 지원거래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로 인해 부과된 과징금만도 3천2억원에 달한다. 이 위원장의 의욕은 대기업 부문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에는 공정위의 칼날을 마침내(?) 언론사로 들이댔다. 이례적인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로 13개 신문사에 2백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언론사도 부당내부거래가 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일부 여론의 지지도 있었으나 국세청 조사와 맞물리면서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남긴 정책적 일대 모험이었다. 일각에서 "이 위원장이 '완장 증후군'에 빠진 것 아니냐"며 꼬집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처럼 'DJ 노믹스'의 구조조정 전선 선봉에서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던 공정위는 올 들어 활동이 뜸해진 느낌이다. 대기업과 언론이라는 버거운 싸움상대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리대금업자의 약관 조사 등 일반 서민보호 위주로 정책을 급선회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정권 말기에 들어서자 공정위가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