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as hell'(미치겠네) 'outrageous'(무법적이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캐나다의 멋진 휴양지 카나나스키스에서 월드컴의 회계부정 사실을 전해들은 직후 내뱉은 말이다.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 참석차 이곳에 온 부시 대통령은 옆자리에 있던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존재도 잊은 채 거친 단어를 쏟아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부해온 자존심이 월드컴 때문에 무너진 사실에 그만큼 화가 났던 것이다. 사실 월가는 지금 심각한 분식회계 신드롬에 걸려 있다. 뉴욕증시는 문을 열면 어떤 새로운 스캔들이 터져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해 한다. GM GE IBM 제록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의혹'대상에 오르내리며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다는 월가는 이제 불법의 온상으로 전락한 듯하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적자투성이인데 경영자들은 수백만달러의 엄청난 스톡옵션을 챙겼다. 탈세도 곳곳에서 적발되고,기업회계를 감사해야 할 회계법인은 공모자로 전락했다. 월가뿐 아니다. 미국 정가도 떠들썩하다. 부시 대통령이 10여년전 운영했던 기업의 불법회계 전력이 새 이슈로 등장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겨냥,이를 호재로 이용하기 위한 정치공세에 한창이다. 회계부정 스캔들은 미국사회에 9·11테러보다 더한 충격을 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금융회사 및 회계법인을 앞세워 미국식 회계기준을 도입하라고 한국기업들에 으름장을 놓은 장본인이다. 그리고 한국을 '투명성'이 부족한 사회로 규정,신용등급을 마냥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런 미국이 이제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유럽측은 미국의 허점투성이인 회계기준을 공격하며 글로벌 스탠더드 자리를 넘보는 상황이다. 어쩌면 미국은 허점 투성이인 나라인지도 모른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개표오류 논란이 단적인 예다. 가장 조직적인 문명국가로 알려진 미국이 선거 하나 제대로 못치르는 국가로 전락했었다.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전형'인 월가가 비틀거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신뢰추락을 고소해하며 '오노 세리머니'를 즐기기에는 뭔가 켕기는 것이 많다. 미국증시가 한국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물론 정부와 의회가 앞장서 새로운 회계제도 및 감사관행을 만들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미국은 방만하게 운영돼온 스톡옵션제도에 제동을 걸고,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방송출연 지침도 발빠르게 마련했다. 공시제도를 손질하고 회계법인의 컨설팅업무와 기업공개업무를 분리하는 작업도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 분식회계를 방조하는 경영자는 즉각 구속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S&P는 스톡옵션을 비용처리해 기업의 순익부풀리기를 차단한다는 방침이며,무디스는 이사회와 경영진간의 갈등 가능성과 지배구조도 신용평가의 잣대로 제시하고 있다. 정의는 분명 강자의 이익이다. 강한 나라,강한 국제기구가 만든 법은 다른 나라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국제질서가 돼온 게 역사다. 글로벌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새로운 룰을 만들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이를 강요할 것이다. 미국발 새 회계제도가 자칫 우리에게 제2의 IMF를 경험하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야만적 얼굴을 방관자처럼 즐기기에 앞서 회계관행을 정비하고 보다 투명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