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접어들면서 하늘과 땅이 뜨겁다. 한 뼘의 그늘이 아쉬워지는 한여름이다. 강렬한 햇볕과 따가운 햇살은 접어두었던 부채를 다시 펴게 한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등장으로 그 역할은 사라지다시피했지만 멋스러운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부채는 더위를 쫓고 햇빛을 가리는 피서 도구이다. 나아가 그림과 글씨를 다양한 모습의 부채에 그려넣음으로써 예술적 품위까지 갖췄다. 에어컨 등이 실용성에 머문다면 부채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게 한다. 가는 대오리로 살을 만들어 넓적하게 벌린 뒤 그 위에 종이나 헝겊을 바른다. 부채는 '부치는 채'가 줄어서 된 말로, 원시시대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더위는 당시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이라"는 말이 있다. 단오가 지나면곧 여름철이므로 친지나 웃어른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이 성행한 것이다. 조선조말까지는 공조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했고, 임금을 이를 신하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한 부채가 나온 것은 언제일까. 중국 진(晉)나라 때의 학자 최표(崔豹)는 '고금주'(古今註)에서 순(舜)임금이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한국문헌 최초 기록으로는 "견훤이 태조 왕건의 즉위 소식을 듣고 공작선(孔雀扇)을 보냈다"는 삼국사기 내용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부채는 특히 아름다워 국교품(國交品)으로 중국을 비롯해 일본, 몽골 등에 진출해 사랑받았다. 일본 도쿠가와(德川) 시대에는 조선부채를 모방해 '조선골선'(朝鮮骨扇)을 만들어냈다. 부채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크게 나누면 둥근부채라고 하는 방구부채와 접었다 펴는 접부채가 있다. 이밖에 별선(別扇)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보통부채보다 특별히 잘 만든 부채를 말한다. 부채가 단순히 더위를 쫓는 용도에서 벗어나 예술의 공간으로 활용된 사례는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망라한다. 한국의 경우 "원나라에 사신을 보냈을 때 헌물 중에 우리의 화입선(畵入扇)이 있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처럼 접선과 파초선, 태극선, 효자선 등에 다양한 예술적 취향을 그려넣었다. 중국은 비단 등 다양한 재료로 부채를 제작했다. 명ㆍ청시대 문인들은 고려에서 전해진 접선에 서화를 그려 그윽한 예술향기를 음미했다. 18세기부터는 광둥(廣東), 마카오 등을 통해 채색풍속화접선과 브리제 부채들이 유럽으로 수출됐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여성들의 필수 액세서리가 되면서 더욱 각광받았다. 중국에서 들어온 접선은 유럽 부채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18세기를 전후해서는 그리스ㆍ로마 신화나 궁정장면, 성경 이야기 등이 부채면에 그려졌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피사로, 고갱 등도 부채그림 작업을 했다. 부채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시회가 때마침 열리고 있다. 서울 이태원2동의 화정박물관(☎ 798-1954)은 소장품 중 동아시아와 유럽의 부채 200여점을 엄선해지난 6월 12일부터 오는 9월 29일까지 일반에 선보인다.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대한민국 부채그림'전을 '아트월드컵 미술대제전'(☎ 031-902-8703)의 일환으로 개최한 한국문화예술센터도 규모를 축소한 연장전시회를 15일부터 한달간 여는방안을 고려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