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처음 열리고 있는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상대 선수들을 대적하기에도 벅찬 선수들이 또다른 강적과 싸우느라 애를 먹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마, 일본에서는 쓰유(梅雨)라 불리는 이 시기의 날씨는 선수들로하여금 마치 한여름과도 같은 더위를 느끼게 만드는데다 유니폼에 습기가 스며들어선수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다. 지난 14일 조별예선 3차전에서 일본에 패한 튀니지의 수비수 할레드 바드라는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간 오사카(大阪)에서 경기가 끝난 뒤 "더위에다 높은 습도가경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마이클 오언도 역시 오사카에서 열린 지난 12일 나이지리아전에서 예리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너무 덥다. 지금까지 뛴 경기 중에가장 힘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무더위 탓에 선수들은 경기 와중에도 서로 경쟁이나 하듯 앞다퉈 물을 마시고 있는데도 후반 들어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 16강 진출에 실패한 슬로베니아의 일루고리치 코치는 "이런 대회는 신체적 준비가 중요한데 우리는 동아시아 기후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다"고 반성하면서 "바로 이점이 승패를 갈랐다"고 분석했다. 무더위에 대비해 기후적응훈련을 마친 팀들은 그에 맞는 성과를 내고 있다. 사이판에 준비캠프를 차렸던 아일랜드는 16일 수원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깝게 패했으나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사상 첫 5대회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인 브라질도 말레이시아에서 친선경기 등 적응훈련을 마친 덕을 보고 있다. 반면에 지나치게 장마에 신경을 쓴 나머지 역효과를 낸 팀도 있다. 도쿄 초후(調布)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사우디아라비아는 본국에서나 일본에서나우천에 대비한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나 이것이 되레 선수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예선 첫상대인 독일에게 8골이나 허용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축구의 과학적 분석으로 유명한 아사이 다케시(淺井武) 야마가타(山形)대 교수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플레이할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탈수증상을 방지하기 위해경기 전에 충분한 수분을 보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습도나 기온이 올라가면 공기밀도가 낮아져, 야구에 비유한다면 홈런이 나오기 쉬운 상태가 된다"며 장마 때 플레이는 물리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즉 축구로 말하자면 공이 잘 휘지 않는 반면 속도는 올라간다는 것. 또 비가 내리면 공이 미끄러지면서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물덩이가 생겨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해 공의 움직임은 보다 복잡해진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승부를 가르는 결승토너먼트에서 '고온다습'이 어떤 영향을미칠 지 주목된다. (교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