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도 '레 블뢰'를 수렁에서 건져 올리지 못했다. 72년 월드컵 역사상 단 2차례밖에 없었던 전 대회 챔피언의 결승토너먼트 진출실패라는 이변이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벌어졌다. 98년 프랑스대회에서 '아트사커'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섰던 프랑스는 11일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조별리그 A조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필드의 지휘자' 지네딘 지단을 내세우고도 0-2로 패퇴했다. 1승은 물론 단 한골도 넣지못한채 1무승부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를 마감하며 조 최하위에 머문 프랑스는 쓸쓸하게 귀국행 보따리를 챙겨야 했다. 50년 대회 이탈리아, 66년 대회 브라질에 이어 3번째 전 대회 우승국의 16강 진출 좌절의 이변에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가 경악했다. 더구나 98년 이후에도 세계 최정상의 실력을 유지, FIFA 랭킹 1위를 굳게 지켜온 프랑스가 유럽 3개국 리그 득점왕이 포진한 공격수로도 3경기에서 단 1골도 뽑지못한 채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충격은 더욱 컸다. 특히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에 부상을 딛고 출전을 강행한 지네딘 지단은 90분내내 뛰었으나 프랑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덴마크는 2승1무로 조1위를 차지, 16강에 올랐을 뿐 아니라 욘 달 토마손이 대회 4번째 골로 득점 레이스 단독2위에 나서는 겹경사를 누렸다. 프랑스가 탈락한 A조에서 '작은 프랑스' 세네갈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3골씩을 주고 받는 혈전 끝에 1승2무로 월드컵 본선 첫 출전국으로서 16강에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세네갈은 이로써 카메룬(90년 8강), 나이지리아(94, 98년 16강)에 이어 새로운 아프리카 돌풍의 진원지가 됐다. '전차군단' 독일은 시즈오카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세가 대회 5번째 골을 뽑아내며 '불굴의 사자' 카메룬을 2-0로 일축, E조 1위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미완의 대기'라던 클로세는 헤딩슛으로만 5골을 만들어내며 역대 득점왕들이 깨지 못했던 '마(魔)의 6골'을 넘어설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아일랜드도 요코하마종합경기장에서 이미 16강 탈락이 확정된 약체 사우디아라비아를 맞아 3-0으로 낙승, E조 2위로 16강에 나섰다. 이날 A조와 E조 등 2개조에서 조1, 2위가 확정됨에 따라 16강 진출이 좌절된 팀은 모두 9개로 늘어났다. ◆덴마크 2-0 프랑스(A조. 인천) = 부상에서 간신히 벗어난 지네딘 지단까지 투입했지만 프랑스의 `아트 사커'는 활력이 없었다. 프랑스는 전반 18분 실뱅 빌토르드의 패스를 받은 다비드 트레제게가 골지역 오른쪽에서 슈팅까지 연결했으나 골키퍼 손에 걸렸다. 그리고 4분 뒤 덴마크의 선제골. 스티 퇴프팅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문전으로 넘긴 볼을 데니스 로메달이 달려들며 오른발 하프발리 슛을 날려 프랑스 골문을 흔들었다. 전반을 1-0으로 앞선 덴마크는 후반 22분 그랑키아에르가 왼쪽을 파고들다 문전으로 센터링하는 순간 프랑스 수비 마르셀 드사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욘 달 토마손이 무방비에서 오른발 슛, 쐐기골을 터뜨렸다. 앞선 두 경기에서 3차례나 결정적 슈팅이 골대를 때린 바 있는 프랑스는 이날도 2차례나 골대 `악령'에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후반 6분 지단의 오른쪽 코너킥을 드사이가 완벽하게 헤딩으로 연결했으나 골대에 맞고 나왔고 후반 29분에는 트레제게가 골지역 왼쪽에서 왼발 터닝 슛한 볼이 크로스바를 맞고 땅으로 떨어졌으나 골라인 바깥이었다. 왼쪽 허벅지에 압박붕대를 감고 출전한 지단은 간혹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였으나 부상 부위에 대한 부담에다 상대의 밀착 마크에 막혀 예리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네갈 3-3 우루과이(A조. 수원) = 16강 티켓을 향한 의욕을 불태운 양팀이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인 보기드문 명승부였다. 세네갈은 전반 20분 엘 하지 디우프가 문전 쇄도중 우루과이 골키퍼의 깊은 태클로 페널티킥을 얻었고 이를 칼릴루 파디가가 성공, 선제골을 넣었다. 6분 뒤 세네갈은 앙리 카마라의 패스를 받은 디오프가 아크 정면에서 오른발로 침착하게 슛, 두번째 골을 넣은 데 이어 전반 38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카마라가 띄운 볼을 디오프가 오른발로 찼고 공은 크로스바를 맞은 뒤 골라인을 통과했다. 전반을 3-0으로 앞서 세네갈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했으나 우루과이는 후반 들자마자 거세게 밀어붙이며 순식간에 동점까지 따라 붙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모랄레스가 그라운드에 나선지 1분만에 다리오 실바의 슈팅이 상대 골키퍼를 맞고 나오는 것을 차넣으면서 추격전에 불을 댕겼다. 우루과이는 후반 24분 세네갈 수비가 쳐낸 공을 역시 교체 멤버인 디에고 포르란이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오른발 발리 슛, 그물을 갈랐고 후반 43분 알바로 레코바가 페널티킥을 성공,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1골만 더넣어 역전에 성공하면 조 2위로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는 우루과이는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거센 공세를 폈으나 더이상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독일 2-0 카메룬(E조. 시즈오카) = 전반 중반까지 카메룬의 정교한 패스플레이에 2~3차례 위기를 맞고도 골키퍼 올리버 칸의 선방으로 무사히 넘어간 독일은 전반 40분 수비수 카르스텐 라멜로브가 2회 연속 경고로 퇴장당해 힘겨운 승부를 예고했다. 독일은 그러나 숫적 열세를 탄탄한 수비와 기습 반격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을 짰고 후반 5분 선제골을 넣어 분위기를 바꿨다. 득점랭킹 선두 미로슬라브 클로세가 미드필드 중앙에서 수비 3~4명을 달고 전진하다 옆으로 살짝 밀어준 볼을 후반 교체멤버인 보데가 골포스트를 보고 왼발 슛,선제골을 넣었다. 카메룬의 파상 공세를 잘 막아내던 독일은 후반 32분 상대 미드필더 파트리크수포가 2회 연속 경고로 퇴장당해 동등한 입장이 되자 2분만에 추가골을 엮어냈다. 미하엘 발라크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올린 볼을 클로세가 문전으로 뛰어들며 헤딩 슛, 승리에 쐐기를 박은 것. 득점랭킹 1위 클로세는 5골을 모두 헤딩으로 엮어내는 진기록을 이어갔다. 한편 이 경기는 팀당 경고 8회, 퇴장 1명씩 기록될 정도로 거친 플레이가 이어졌고 때때로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일랜드 3-0 사우디아라비아(E조. 요코하마) = 예상대로 아일랜드가 일찌감치 기선을 제압, 쉽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아일랜드는 전반 7분만에 브린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수비를 등진 채 큰 포물선의 로빙볼로 문전에 올려준 볼을 킨이 페널티킥 지점 부근에서 멋진 오른발 발리 슛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후반 16분에는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스티브 스톤턴이 찬 프리킥을 첫 골 도움자인 브린이 수비수 사이에서 풀쩍 뛰어오르며 오른발로 살짝 방향을 바꿔 골문에 차넣었다. 파워와 스피드, 조직력에서 시종 우위를 점한 아일랜드는 후반 42분 더프가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3번째 골을 터뜨려 결승토너먼트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사우디로서는 전반 42분 모하메드 알자하니가 골지역 오른쪽까지 돌파,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상황을 무산시킨 게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 3패로 대회를 마친 사우디는 득점없이 12골을 내주는 참담한 성적을 남겼다. khoon@yna.co.kr (인천.수원.요코하마.시즈오카=연합뉴스)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