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 이후로 우리 사회에는 "20/80"이란 숫자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경영학에서 얘기하는 이 숫자는 20%의 독똑한 종업원이 회사이익의 80%를 창출한다는 의미로 쓰이면서 많은 실증적인 연구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파레토가 오래 전에 말한 "20/80 법칙"은 빈.부를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사회 양극화를 설명하는데도 원용되고 있다. 결국 중산층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논란이 많다. 나는 중산층인가 아니면 저소득층인가. 소득으로 이를 명확히 구분짓는 기준은 없고 다만 주관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일정액의 소득을 갖고 문화생활을 즐겨야 중산층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현재 소득은 미치지 못해도 장래가 밝다면 자신을 중산층에 편입시키려는 심리가 작용하는게 사실이다. 중산층은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계층이어서 누구나 이 주류에 편승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이르러 의.식.주문제가 해결됐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긴 해도 자기 주변과 비교하며 가급적 뒤처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에서 비롯되고 있기도 하다. 며칠전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은 "자신이 중산층에 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했다. 80%가 중산층이라는 말인데,이는 외환위기 직전인 97년에 비해 9%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씀씀이가 커져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10가구 가운데 6가구가 빚을 지고 있으며 가구당 평균 2천5백만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소위 "현시소비"가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대통령후보들이 특권층과 대칭되는 의미로 사용하긴 하지만 경쟁적으로 "서민"을 강조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다. 우리 자신이 느끼는 80%의 중산층도 중요하지만 균형을 잃지않는 정신적인 중산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