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나 구스마오(Xanana Gusmao·56).그는 동티모르 국민들이 독립영웅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인도네시아에 대항해 17년간 게릴라전을 펼치며 싸웠고,7년 동안 투옥됐었다. 그래서 구스마오는 곧잘 남아공의 '만델라'에 비유되곤 한다. 구스마오는 어제 4백75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친 동티모르의 식민지배와 위임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식민지 국가의 생활이 그렇듯 구스마오의 어린 시절도 불운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딸린 식구들이 많아 둘째 아들인 그도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15살 때부터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고 일당을 받는 타이피스트 일을 했다. 군대복무를 마칠 즈음에는 자유로운 농부가 되는 게 꿈이었다. 1975년 수도 딜리를 서성대던 구스마오는 한 정치집회에서 독립을 열망하는 민중들의 광경을 목도하고 이내 프레틸린(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에 몸을 던졌다. 당시는 포르투갈이 식민지 동티모르를 내놓기로 했으나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합병하기 위해 침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현대사에서 동티모르만큼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도 별로 없을 듯 싶다. 말레이어로 '동방'이라는 뜻을 가진 티모르섬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중간에 위치해 16세기 포르투갈이 중개무역항으로 쓰기 위해 점령했었다. 그러자 1661년 이 곳을 탐낸 네덜란드의 침략으로 섬이 반으로 잘리면서 서쪽은 네덜란드,동쪽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후 서티모르는 역시 네덜란드 지배하에 있던 인도네시아에 쉽게 동화됐으나,동티모르는 여전히 식민지로 남았다. 이후 포르투갈이 동티모르 독립을 약속하면서 이를 합병하려는 인도네시아와 끊임없는 유혈충돌을 빚게 됐다. 우리나라 강원도 만한 면적에 인구 80만명인 동티모르는 오랜 독립투쟁으로 무려 20만명이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국토는 그야말로 피폐해졌고 인구의 70%가 실업자로 전락했다. 구스마오는 이제 외세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경제적 독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긴 여정에 나섰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