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현물값이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주력제품인 128메가 D램 가격은 두 달새 '반토막'이 났고 한 때 품귀현상을 빚었던 DDR(더블 데이터 레이트)도 맥을 못추기는 마찬가지다. 단순히 2.4분기 비수기에따른 `조정'으로 해석하기에는 시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작년과 같은 사상최대의 불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은 드물지만 구조조정 실패와 공급과잉 재연, 수요부진 등의 여파로 반도체 경기회복이 지연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감은 높아지고 있다. ◆ 반토막난 D램 값 = 3월초부터 시작된 D램 현물가격 하락세는 낙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주력 128메가 D램은 9일 오후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전날보다 9.9% 폭락한 2.20 달러(평균가)를 기록한데 이어 10일 오전장에서 다시 5% 하락, 2.0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올들어 최고치인 지난 3월5일의 4.38 달러의 절반 수준. 2달러선도 지난 12월25일 이후 4개월여만에 붕괴될 조짐이다. 같은 시기 15달러 이상까지 치솟았던 256메가 D램 역시 10일 현재 7.18 달러로 두달새 반토막이 났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물시황을 '패닉(Panic)'에 비유, 1달러 선을 위협받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처럼 D램 현물값이 폭락하는 원인을 놓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렇찮아도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하이닉스-마이크론 협상이 결렬된데다 증산경쟁으로 공급과잉 현상이 재연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공급과잉의 징후는 주요 메이저업체들의 재고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 1.2월 '없어서 못팔' 정도로 바닥을 드러냈던 평균 재고는 최근 다시 늘어나면서 적정 재고수준(4주)을 넘어 최대 6주에 이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이달중 실적발표를앞둔 마이크론을 중심으로 한 일부 생산업체가 출하물량을 쏟아내고 이에 영향을 받은 브로커와 유통상들이 투매를 지속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컴팩-휴렛팩커드간 합병으로 인한 일시적 수요조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마이크론 협상결렬 이후 업체간 `공조' 분위기가 급격하게 무너진 점도 공급과잉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저가 출혈경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면서 업체마다 `너죽고 나살기'식의 물량공세가 펼쳐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외국계 애널리스트는 "작년말 업계 내부적으로 생산.출하량을 적정규모로 유지해 가격을 지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으나 하이닉스 매각무산 이후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지적했다. ◆ 고정거래가도 `먹구름' = 현물가 폭락으로 D램 고정거래가도 인하압력에 휘청거리고 있다. 현물가가 고정가에 선행(先行)하는 성격이 강해 현상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시각. D램 가격결정 주도권이 최근 공급자(D램업체)에서 수요자(PC업체)로 다시 넘어온 것으로 알려져 고정가 인하가 예상보다 '빨리, 큰 폭으로' 현실화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 대형 PC업체인 델은 최근 D램업계의 '하위그룹'인 대만 난야테크놀로지와 공급계약을 체결, D램 메이저업체간의 가격인상 담합가능성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D램업계는 적정가격을 지탱하자는 '공조전선'이 무너지고 작년과 같은 '경쟁체제'로 급속히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현재 고정가는 지난달 4.8∼5.0달러에서 이달초 4∼4.2 달러로 내려가 있는 상태. 일부 전문가들은 현물가가 2달러 선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고정거래가도 3달러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물가가 전체 D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에 불과한데다 고정가와 1달러 이상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업계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물물량이 거의 없고 하이닉스도 비중이 10% 미만이다. ◆ 삼성전자.하이닉스 '비상' = 그러나 고정가 하락이 현실화될 경우 D램업체의 수익성에 직격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UBS워버그증권이 이날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을 올들어 증권사중 처음으로 하향조정한 것을 계기로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를 급랭시켰다. 삼성전자는 D램 현물가 하락에 대해 시장 주력제품이 128메가 D램에서 256메가D램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고 고정가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256메가 D램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단연 선두라는 점에서 오히려 기회를 맞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급격한 현물가 하락속도와 증시 반응에 당황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아무래도 독자생존을 추진중인 하이닉스다. '매각이냐, 독자생존이냐'의 기로에선 하이닉스로서는 가까스로 이뤄낸 지난 1.4분기 흑자전환실적이 다시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독자생존 추진의 명분이 약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 하반기 반등 기대 = D램 현물시장이 이처럼 급격한 침체를 보이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 '바닥'을 찍고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달 말 또는 6월 초 2달러대를 저점으로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현대증권 우동제 애널리스트는 "D램 가격이 작년 9월 1차 저점을 형성한뒤 올해 5∼6월 2차 저점을 형성하는 W자형 변동이 예상된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256메가 D램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야말로 '조정'을 심하게 받는 정도로 보면된다"며 "대세는 회복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IT경기 회복속도가 예상외로 부진한데다 D램업계 구조조정 실패에 따른 공급과잉 현상이 쉽사리 해소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반도체경기 조기회복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