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5월 들어 수급악화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의 현물 매도가 아흐레째 지속되고 선물시장에서도 조정에 대비한 매도헤지 규모가 커지고 있다. 거래소의 경우 이번주 들어 5월물 옵션 만기일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증시로 자금유입이 지연되는 가운데 청산되야 할 매수차익잔고는 여전히 쌓여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가 급반등하면서 1/4분기 실적 호전 이후 수출과 미국 경제 회복을 전제로 1,000선 시대 도래를 예견했으나 미국의 경제회복이 둔화되는 가운데 기술주 급락 사태로 당분간 '기대 체감의 법칙'이 관통할 전망이다. ◆ 수급 안정 확인해야 = 이날 종합지수는 826대로 30포인트 급락하면서 지난 3월 8일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선물 6월물도 104대가 붕괴되며 종합지수와 마찬가지 기록을 세웠다. 5월물 옵션 만기를 앞두고 대형주의 변동성이 큰 가운데 외국인의 선매도가 현선물에서 공격성을 보이자 수급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외국인은 이날 1,659억원을 순매도하며 지난 4월 23일 이래 아흐레째 순매도하며 1조900억원을 매도했다. 올들어 매도를 지속한 결과 지난 9.11 미국 테러 이후 누적 포지션이 순매도로 전환됐다. 게다가 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은 지난 2일부터 사흘째 순매도하며 6,000계약 이상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사흘째 순매도한 것은 지난 4월 초 이래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9일 5월물 옵션 만기일을 앞둔 상황에서 매수차익잔고는 1조600억원 가량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LG투자증권의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5월물 옵션 만기를 앞두고 청산되야 할 매수차익잔고가 여전히 있어 수급상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며 "외국인과 프로그램 매물이 여전해 방향성을 먼저 확인해야 되며 옵션 만기일 이후 수급 개선 여부도 먼저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중반을 넘어서면서 시장베이시스 콘탱고가 0을 향해 축소된 가운데 이틀간 종가 기준으로 백워데이션을 보여주는 등 선물시장 투자자들의 시장전망도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대한투신증권의 한정희 분석역은 "옵션 연계 신고분이 3,000억원 가량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다"며 "내일 모레 이틀 동안 5월물 만기를 앞두고 시간가치가 사라지면서 콜옵션 고평가 인식이 드러날 것이므로 50% 가량은 청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5월물 옵션 만기 여건이 별로 좋지 않는 게 문제다. 지난 4월과 비교할 때 기관은 매수여력도, 매수의사도 없는 상태에서 투자심리도 좋지 않은 게 탈이라면 탈이다. 여기에 외국인 현선물 매도가 언제 그칠지 모르는 상황이고 옵션 만기일 이후 수급 여건이 개선될 기대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심리가 좋지 않게 된다면 800대 붕괴 우려감보다는 850선 고점 인식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LG의 황창중 팀장은 "옵션 만기를 앞두고 매수차익잔고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서 "일단 미국 시장이 7일 금리동결을 계기로 반등하면서 안정감을 찾을 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 경제회복 지연, 첨단주 조정 양상 = 미국 경제는 지난 1/4분기 성장률이 5.8%에 달했다는 호재를 내놓은 뒤부터 2/4분기 회복세 둔화 분위기로 전환됐다. 지난해 경기침체 속에서 경제를 지탱했던 소비수요가 둔화되고 4월 실업률이 6.0%로 8년중 최악으로 나타면서 모건스탠리의 전략가 스티븐 로치의 '더블딥 경고음'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대우증권의 김영호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가 지난 1990년대 10년간 국면별로 오버슈팅을 경험하면서 호황이 연속해 왔다"며 "지난해 일부 분기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다고 해서 누적 초과수요가 모두 해소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500대 이하로 가파르게 떨어졌고 나스닥지수도 다시 1,600선 테스트에 들어가면서 첨단주에 대한 고평가 조정시각이 아우러지고 있다. 반도체 128메가 D램 현물가격이 3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등 가격 상승이 약화된 뒤에 40만원대를 호가하며 사상최고치로 치솟던 삼성전자도 34만원대로 급락했다. 자사주 매입을 하면 실패한 적이 없다던 '무적 신화'가 일축되면서 기술적으로도 60일선이 날카롭게 깨졌다. 5일 이동평균선이 20일선을 하향 이탈하는 단기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지 며칠도 안돼 다시 5일선이 60일선을 하향할 공산이 높아졌다. 이날 공교롭게도 첨단주가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의 가권지수도 이날 5% 가까이 급락했다. 단기 반등이 이따금씩 진행되기 했으나 미국, 한국, 대만 주가 모두 가파른 기울기가 평면화될 때까지는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신영증권의 김인수 투자전략팀장은 "종합지수 1,000에 대한 전제는 미국의 경기회복, 특히 IT업종의 회복이었고 국내적으로는 수출의 회복이었다"며 "그러나 미국의 IT업종지수가 지난해 9.11 테러 이후의 저점을 붕괴하는 직전에 몰리고 있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인수 팀장은 "종합지수가 800선에 닿게 되면 가격 메리트 등이 생겨나는 국면이 도래할 것이나 기대감을 낮춰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수급선순환이 깨지고 외부여건과 투자심리도 좋지 않아 기간 측면에서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미 금리인상 유보될 듯 = 이런 가운데 국내외 금리인상에 대한 시각이 한발 후퇴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은행 박승 총재가 취임 이후 금리인상에 대한 '야생마적 공격성'을 스스로 길들였고, 한은의 일상적 업무일지도 모르겠으나 지난 금요일 이래 한은의 유동성 지원도 이어졌다. 전윤철 부총리도 경제정책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5월 중순 이후 경제지표를 감안해 정책을 살필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 하이닉스 매각 협상이 실패하면서 정부의 정책은 대우차 매각 후속 처리와 함께 하이닉스 등에 대한 신뢰회복에 더욱 강조점이 두어질 전망이다. 전윤철 부총리는 이날 경제설명회에서 하반기 투자회복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거시정책에 대한 언급보다는 "하이닉스의 부실문제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며 당면 현안의 우선 순위를 드러냈다. 미국의 경우도 대체로 경기회복세 지연에 따라 오는 8월이나 돼야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21명의 월가 프라이머리 딜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5명이 오는 8월 1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에서 금리가 처음으로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우존스와 CNBC가 19명의 프라이머리 딜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3명의 딜러들이 첫 금리 인상 시기는 오는 8월 FOMC가 될 것이며 인상폭은 0.25%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재경부도 미국 경제가 1/4분기 예상보다 높은 5.8% 성장에도 반이상이 재고조정에 기인한다며 그동안 성장을 주도했던 소비와 주택경기가 둔화조짐, 유가불안 지속, 4월 중순 이후 주가와 환율의 급락 등의 해외 불확실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신경제연구소의 조용찬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140선을 넘는 등 긍정적 전망이 지속되고 있다"며 "화요일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금리인상이 유보된다면 일단 수급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저점 매수세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기석기자 ha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