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던 때 작품도 안 팔리는데 매일 나오셨어요. 무척 안쓰럽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덩치가 큰 그 분이 집 화장실이 비좁아 비교적 깨끗하고 넓은 화랑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어요" 박수근의 작품성이 최고에 달했던 1960년대초 그의 작품을 많이 거래했던 박명자 갤러리현대 대표가 들려주는 회고담이다. 박 대표는 박수근을 비롯 변관식 박고석 김흥수 이대원 등 쟁쟁한 화가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한국 근·현대 미술의 산 증인. "당시 박 선생님의 작품값이 3천원(요즘 가치로 70만∼80만원)밖에 안했는데도 잘 안 팔렸습니다. 반면 당시에 그보다 훨씬 비싼 장욱진 선생님의 작품은 입도선매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요" 박 대표는 "요즘 박 선생님 작품 가격이 호당 1억원을 넘어섰어요. 회화 작품으론 국내 최고가지요. 하지만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박 선생님이나 그 가족들은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라고 했다. 사실 그의 사후 유족들에게 남겨진 회화작은 한 점도 없었다. 생전에 작품을 팔아 가족들이 연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도 "소장하고 있던 박 선생님 그림을 70년대에 3만∼5만원에 팔아넘겼다"며 "지금 생각하니 박 선생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는 안목이 없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박수근 그림이 미술 불황기에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은 희소성과 작품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유화 작품은 2백여점으로 미술관 소장품을 제외하면 거래가 가능한 작품은 1백점 내외에 불과하다. 박수근의 장녀인 박인숙씨(인천디자인고 교감)는 "아버님의 선(善)한 인간미가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어 애호가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