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위기에 몰린 국가에 대한 대처방안을 놓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과도한 외채를 지고 있는 국가에 한시적으로 채무상환을 중단할 수 있게 하는 '국가파산제도'를 골자로 한 IMF의 개혁안이 미국 정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될 상황에 처했다고 3일 보도했다. 존 테일러 미국 국제담당 재무차관은 2일 국제경제연구원(IIE)연설에서 "채무국이 채권국들과 직접 은행 차관과 채무 계약의 조건 변경 문제를 협상하고 필요하다면 채무 재조정에 합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미국은 외환위기를 처리하는 데 있어 분권화되고 시장지향적인(decentralized and market-oriented) 방식을 강력히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같은 자리에서 앤 크루거 IMF 수석 부총재가 발표한 IMF 규정개정안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크루거 부총재는 개정안에서 기업 파산제도를 본딴 '국가파산제도'와 '국제사법위원회' 도입을 주장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특정국가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 한시적으로 채무상환이 유예되며 채권국들은 국제채권단을 구성해 채무국의 구조조정에 관여하게 된다. 국제채권단은 기존의 채권자 1백% 찬성에서 채권자 51%의 찬성으로만 구조조정계획을 진행할 수 있다. IMF는 이 과정에 관여하지 않고 국제사법위원회가 이를 감독하게 된다. 이에 대해 테일러 차관은 "이 방안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급진적"이라며 "미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IMF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반대로 개혁안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이는 협상과정에서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개혁안을 반대해온 민간 은행들과 금융회사들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