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부도시 하노버의 3월은 차갑고 스산하다. 13∼20일 열린 세빗(CeBIT)기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서운 바람과 축축히 내리는 비가 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42만㎡에 달하는 전시장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의 열기로 연일 후끈 달아올랐다. 61개국 7천9백62개사가 전시부스를 차린 이번 세빗에는 8일 동안 모두 70만명이 다녀갔다. 정보기술(IT)관련 박람회로는 전시규모나 관람객수면에서 단연 세계 최대다. 라이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추계 컴덱스에는 지난해 15만명이 관람했다. 하노버가 속한 니더작센주의 전략홍보팀장 안드리아스 크리샤트는 "컴덱스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소비자 중심의 행사라면 세빗은 관람객들의 대부분이 IT비즈니스맨들로 마켓플레이스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최대 이벤트로 자리잡은 하노버 세빗은 부상하고 있는 독일의 IT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일은 아직 PC보급률이나 인터넷이용자수 등 여러 면에서 IT와 신경제의 종주국인 미국에 뒤진다. 그러나 최근 몇년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며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권내에서도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IT의 많은 영역에서 중간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현재는 유럽 선두국가로 올라섰다. 지난해 독일의 전자상거래 매출은 1백91억달러로 영국(1백78억달러)을 앞질렀고 유럽에서 독일의 ICT시장 점유율은 21.3%로 역시 영국(20.5%)을 제쳤다. 독일 연방정부는 99년 9월 '정보사회 독일'이란 제목의 실행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을 경쟁력있는 정보사회로 도약시키기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마스터플랜.뉴미디어보급 전자상거래 교육 보안 직업훈련 기술 인프라 전자정부 등 다양한 영역에서 2005년까지의 구체적인 연간 목표와 이행방안을 담고 있다. 이어 2000년에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모두에게 인터넷을',정부와 기업 노조의 협력방안인 'D21이니셔티브'란 하위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독일 경제기술부 정보사회국의 올리버 람프레히트 박사는 "독일은 지난 3년간 PC와 인터넷 보급,인프라, 전자상거래 등 모든 IT영역에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며 "지금까지는 프로그램의 목표를 초과달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래의 경쟁력은 정치 사회 경제 등 전영역에서 IT를 통해 혁신적인 발전을 정보사회로 얼마나 빠르고 순조롭게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는 국가의 영역을 초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일은 이제 유럽의 정보화를 이끌고 있다. '정보사회 독일'은 유럽차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럽연합(EU)이 2000년 6월 내놓은 유럽의 IT실천계획인 'e유럽2002'는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본땄다. 람프레히트 박사는 "전자상거래 정보격차 등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독일은 계속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노버=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