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어느새 관절염, 디스크. 이번에는 내 차례일까 두려운 암세포. 골반염, 방광염, 오십견, 위염!”뮤지컬 ‘다시, 봄’(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다. 가감 없이 무대에 올려진 중년 여성의 애환을 목격한 관객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터트리며 눈물을 닦는다.작품은 ‘아줌마들의 수다’로 펼쳐진다. 동창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한 50대 여성 7명이 저승사자에게 각자 살아야 할 이유를 대며 설득한다.어떤 이는 챙겨야 할 가족이 있다고 한다. 아들이 맡긴 운동화를 세탁소에서 찾아와야 하고, 남편은 나 없으면 냄비 하나 찾지 못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은옥은 홀로 키운 아들이 취업한 덕에 어릴 적 포기한 가수의 꿈을 좇을 수 있게 됐다. 아나운서 진숙은 나이가 들었다며 자신을 밀어내고 면박을 준 상사에게 할 말이 남아있다. 미혼의 커리어우먼 연미는 여생을 함께할 짝을 찾는다는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이 작품은 몸이 늙고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허무함을 인정하고 보듬어준다.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기억이 가물가물해 가족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자책하는 수현에게 저승사자는 어릴 적 화가의 꿈을 일깨워주면서 ‘할 수 있다’고 말한다.작품은 중년 여성의 삶의 부정적인 면과 희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생의 찬란한 시기는 끝나고 모든 게 시들어가는 가을과 겨울이 됐다고 느끼는 여성에게 희망을 일깨워준다. 사계절이 지나고 다시 봄이 돌아오듯, 이들의 인생에도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 작품의 제목이 ‘다시, 봄’인 이유다.여성의 삶의 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현대 오페라 ‘처용’을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각국의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다음달 선보인다. 2024 파리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K클래식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다.27일 국립심포니는 국립오페라, 국립합창단과 함께 오는 6월 9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 11일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13일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에서 오페라 처용을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 국립예술단체가 함께 해외 투어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1987년 국내 초연한 오페라 처용은 신라시대 설화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한국어 말맛을 주요 골조로 한국 전통음악과 바그너의 유도동기 기법(라이트 모티브)을 접목한 창작 오페라다. 작품은 옥황상제의 아들 처용이 부패한 신라를 구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지만 지상의 여인 가실과 사랑에 빠지고, 가실을 탐내던 역실의 꼬임에 넘어가 사랑과 나라를 모두 빼앗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투어에서는 제1막 ‘옥황상제의 진노’, 제2막 ‘경(승려의 노래)’ 등 주요 장면을 엄선해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관객과 만난다.최다은 기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미술 작품으로도 즐기고 싶다.’회화를 공부하던 독일 작가 그레고어 힐데브란트(50)는 20대 중반이던 1990년대 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자르고, 변형하고 쌓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카세트테이프는 음악을 저장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매체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모은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서로 선물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었으니, 카세트테이프는 그 자체로 추억과 애정을 담는 수단이기도 했다. 작업을 계속하면서 그의 재료는 레코드판(LP)과 VHS 비디오테이프 등으로 확장됐다.세월이 흘렀다.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카세트테이프는 2000년대 초반 CD와 MP3 파일에 자리를 내주며 급격히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불과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그 존재조차 잊힐 지경이 됐다. 그러면서 힐데브란트의 작업에도 향수와 복고라는 의미가 덧씌워졌다. 세련된 색채와 조형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미까지 더해지니, 샤넬과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 업체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서울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된 대형 작품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힐데브란트의 개인전이 지금 청담동 페로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비롯해 추억의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향수. 힐데브란트는 “카세트테이프, LP 등 과거의 물건들을 재료로 사용하다 보니 작품 주제도 추억에 관한 쪽으로 쏠리게 됐다”며 “기둥 작품의 색상 조합은 고향의 분수대 색깔,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입었던 옷 색깔 등 내 기억에서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