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응원 구호 소리만 들리면 반사적으로 손이 하늘로 올라가는 아줌마들이 있다. 자다가도 "축구" 소리만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인다.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구호속에 녹여버린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공식 응원단인 "붉은 악마"에 가입한 아줌마 회원들의 모습이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아지랑이를 앞세우고 찾아오던 날 서울 사당동 남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목 축구대회에 이들 "붉은 아줌마"들이 떴다. 정홍숙(34,부산 수영구 망미동.이하 정)=오늘 모임에 오려고 부산에서 새벽기차를 탔어요. 남편은 떼놓고 세 딸 (딸 둘은 쌍둥이)만 데리고 올라왔죠.남편은 아직 붉은 악마에 가입도 안했어요. 빨리 가입시켜야 하는데 말을 잘 안들어요.(웃음) #남편보다 축구가 더 좋아 오승희(29,서울 마포구 서교동)=처음엔 남편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회원에 가입했는데 요즘은 남편보다 제가 더 난리예요. 도대체 그 무거운 몸(임신 6개월째)으로 왜 운동장에 나가려하느냐고 남편은 극구 말리지만 집에 있으면 좀이 쑤셔서 못살겠어요. 남편도 이젠 두손 들었어요. 박성례(30,경기도 안산.이하 박)=저도 남편이 등록했어요. 내가 붉은악마에 가입했다는 걸 몇개월 지난 다음에야 알았어요. 처음엔 그게 뭔가 했죠.요새요? 주말이면 애들하고 축구하러 나가요. #애들 재우고 "번개" 가요 김광미(39,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이하 김)=왜 결혼하면 사람만날 일이 드물어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하고 뭉친다는게 너무 좋아요. 밤에 "번개" 모임(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동호회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갑자기 만나는 것을 뜻하는 은어) 공지가 뜨면 애들 재워놓고 나가죠.아줌마들이 언제 그러겠어요. 배소연(29,서울 성북구 정릉동.이하 배)=첨엔 축구를 무슨 재미로 보나 했는데 지금은 극성팬이 됐어요. 원래 인터넷에 "ㅇ"자도 몰랐는데 게시판에 뜬 공지사항 보려고 맨날 컴퓨터 앞에 앉있다보니 이젠 인터넷 도사가 다 됐어요. 김미경(35,경기도 광주.이하 미)=그동안은 TV로 경기를 지켜본 경우가 많았어요. 남편이 경기장으로 가고 저는 가게를 지켰거든요. 하지만 월드컵 기간에는 꼭 갈거예요. 인천경기랑 대구경기 티켓을 사뒀거든요. 제 아들도 축구선수예요. 돈이 문제겠어요? # 구호 외치며 스트레스 날려 정=부산 대구 인천에서 열리는 한국전 경기 입장권은 다 사놨어요. 외국가서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다섯 배도 넘게 돈이 깨질텐데요. 시장가서 한두푼 깎아서 모은 거 이럴때 써야죠 뭐. 오=남편이 표를 알아서 끊어왔는데 6월이 산달(産月)이어서 걱정이예요. 꼭 경기장에 가서 봐야하는데. 김=술자리든 어디든 우린 모이기만 하면 자연스레 응원을 하게 돼요.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나면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래서 소리를 못 지르게 하는 술집은 아예 안간답니다. 박=부산에 원정 응원을 갔을 때예요. 오전 10시쯤에 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목이 쉴 때까지 응원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4시였어요. 파김치가 다 됐죠.그래도 대한민국 주부들이 어디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겠어요. 정말이지 목 쉬는 것도 추억이예요. #안정환 오빠 화이팅! 김=가장 좋아하는 선수요? 물론 안정환이죠.잘생기고 골 감각도 있고,뿜어나오는 카리스마...정말 대단한 선수인 것 같아요. 미=고종수 선수랑 안정환 선수를 가장 좋아해요. 고종수 선수는 남편하고 성이 같아서요. 물론 실력도 뛰어나죠.안정환 선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잘 생겼잖아요. 이번에 대표팀에 다시 발탁되서 너무 기뻐요. 최경수(33,서울 관악구 신림동.이하 최)=뭐니뭐니해도 안정환이죠.(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 남자회원중 한명을 가리키며)저기 뛰는 머리 긴 선수 보이시죠? 제 남편인데 살만 좀 빠지면 안정환 닮지 않았어요? 예? 자세히 좀 보세요. (이밖에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홍명보 선수,이영표 선수 등이 거론됐다) #히딩크,끝까지 믿을거예요. 정=(히딩크 감독의 싸인이 선명하게 있는 붉은 유니폼을 뽐내며) 히딩크 감독은 개성이 참 뚜렷해요. 선수들도 지도 방식에 대해 좋은 평가를 주잖아요.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단 차분한 마음으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어요. 배=문화가 달라 문제가 가끔 구설수에 오르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건 존중할만해요. 그치만 큰 경기를 앞두고 너무 체력 훈련을 많이 시키다보면 부상 위험도 있으니까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국민들도 "한국축구는 이래서 안돼"라고 비관적으로 보진 말았으면 해요. #16강 반드시 간다 박=객관적으로는 좀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꼭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믿어요. 홈 잇점도 있고 앞으로 조직력이 더 탄탄해진다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정=희망이 크면 된다고 하잖아요. 꼭 올라갈거예요. 특히 미국은 꼭 이겼으면 해요. 그런 말도 있다잖아요. "우리는 미국이 지난 겨울에 솔트레이크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억울한 판정에 대한 앙갚음을 해야죠. 최=지난번 북중미컵을 보니까 체력이 떨어진 것같아서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월드컵때까지는 개선될 것이라고 봐요. 두고보세요. 반드시 16강까지 갈겁니다. 김=언젠가 원주에서 모임을 한적이 있어요. 전국각지에서 모였는데 원주지역 회원들이 유스호스텔 잡고 바쁜 와중에도 여러가지 준비를 했어요. 다 모여서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열심히 응원을 하는데.뭐랄까 "하나된 느낌" 이런게 느껴지더라구요. 붉은악마 활동을 하면서 가슴 뭉쿨해지는 때가 많아요. #월드컵을 넘어서 최=응원도 좋고 이기면 더욱 좋지만 무었보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아요. 전에는 "월드컵이 끝나면 시큰둥해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2002 월드컵이 끝나도 붉은악마는 영원할 겁니다. 글=고경봉.김미리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