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TV홈쇼핑 시장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QVC 관계자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성장 속도가 놀랍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탄생해 유아기에 불과한 우리나라 TV홈쇼핑 시장은 지난 2000년 1조원 규모로 몸집이 커버렸다. 이어 지난해 2조원,올해 4조원(예상치)으로 시장 규모가 해마다 2배로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양적 팽창에도 불구,질적 수준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국의 무관심과 소비자들의 충동구매가 '몸집과 정신연령의 격차'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는 지적이다. 우선 TV홈쇼핑의 본질과 행위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 문제다. 현재 유통관련 사업을 규제하는 법률로는 유통산업발전법,공정거래관련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전자거래기본법 등이 있다. 이들 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백화점,할인점,방문판매,다단계판매,통신판매,인터넷쇼핑몰 등 갖가지 유통관련 사업을 일정 부분 규율하고 있다. 그러나 TV홈쇼핑만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홈쇼핑 고객 대부분이 중산층과 서민층인 만큼 정부와 언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충동구매와 쇼핑중독증도 문제다. 여성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구조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TV홈쇼핑의 '일등 공신'인 30,40대 주부들 중 일부는 '매진 임박'이란 자막이 나오면 '가슴이 뛰면서 전화통에 손이 간다'는 쇼핑중독증 환자들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홈쇼핑 경험이 있는 2백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10.1%가 1주일에 2회 이상 홈쇼핑에 몰두한다고 답했다. 21.8%는 'TV를 보다가 즉석에서 구매를 결정한다'고 응답했다.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것은 홈쇼핑업체의 상술뿐만이 아니다. 방송관련 당국의 무지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홈쇼핑채널의 결정은 종합유선방송업자(SO) 손에 달려있다. 드라마나 뉴스를 보려고 채널을 바꾸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홈쇼핑 중독자가 될 수 있는 방송환경이 마련돼있는 것이다. 홈쇼핑업체들이 부쩍 커진 체격에 걸맞게 정신연령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