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냉전기간 상호 대량 파괴의 원칙은 평화를 유지하게 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에 대한 위협은 책임있는 행동을 보증했다. 유로시스템의 설계자들은 단일 통화를 채택한 유럽연합(EU) 12개국의 책임있는 행동을 담보하기 위해 핵무기와 같은 위력을 지닌 조항을 창조해냈다. 유로의 안정성장협약은 유로권에 속한 국가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할 경우 해당국가가 GDP의 0.5%를 벌금으로 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수지 균형을 맞추지 못해 쩔쩔매는 정부가 수십억유로에 달하는 치욕스런 벌금을 내고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 조항의 취지는 유로권의 모든 정부들이 재정정의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유로 지폐와 동전 통용이 성공적으로 출발한 지 불과 한달 만인 지난달말 유럽위원회는 3%를 초과할 위험에 처한 한 유로존국가에 첫 번째 경고를 보냈다. 경고를 받은 주인공은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인들은 누구보다도 안정성장협약을 원했고 지지했다. 전후 건전한 통화를 유지해온 독일의 전통이 허약한 통화와 인플레이션, 재정적인 무책임 등으로 이름 높은 이탈리아같은 국가들과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는 것에 의해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수부진과 경기 하락으로 현재 가장 많은 재정적자를 짊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독일인들이다. 유럽위원회는 올해 독일의 재정적자가 GDP의 2.7%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금의 위협은 이미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곤란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선거를 앞두고 독일의 높은 실업률을 달래기 위해 더 이상 선심성 지출을 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독일이 '유로클럽'의 한 멤버로서 독자적인 금리정책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적자폭이 확대되더라도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독일이 연말에 3% 한계선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럽위원회는 독일경제가 올해 0.75% 성장한다는 전제하에 2.7%란 추정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0.75%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경제학자들은 독일경제가 올해 0.6%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GDP 대비 재정적자율을 1.5%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2.6%로 나타났다. 분명히 지난해와 비슷하게 전망치는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이 3%룰을 지키지 못한다면 EU는 매우 곤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유럽 외교관들은 어떤 유로국가라도 안정성장협약에 규정된 벌금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유로법의 일부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법의 집행을 주장해 왔다고 해도.또 협약에 쓰여진 퇴출조항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고 독일이 그 조항들에 분명히 해당된다 하더라도.어쨌든 독일을 곤궁에서 벗어나게 할 길을 찾아야 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협약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며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약 없이도 시장은 유로전체의 자산을 손상시키지 않고 낭비하는 국가의 채권값을 그만큼 낮게 평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국가재정의 엄격함을 유지하고 무분별한 재정남용으로 유로전체의 금리가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협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유로화의 신뢰성이 이미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협약이 완화되거나 폐기될 경우 초국가적인 새로운 통화의 신용도가 추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Could the euro's nuclear option ever be used? '란 제목으로 실린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