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전송 방식 표준을 놓고 개미 쳇바퀴 돌듯 같은 논쟁을 계속하는 건 방송사는 물론 전자업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래 전에 결정된 미국식에 따라 전자업계가 이미 막대한 기술개발비를 투입한 점을 감안할 때 이제 와서 방식을 바꾸는 일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지도 의문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문제는 1997년 정통부가 미국식으로 결정했으나 2000년 방송기술인연합회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건물이 밀집된 우리나라 도심엔 유럽식(COFDM)이 낫다는 주장이었으나 정통부에선 미국식(ATSC)이 보다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변경불가 방침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MBC 디지털방송 현장 비교시험 추진위원회"가 지난 연말 양쪽을 비교한 결과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우수하다며 정통부에 전송방식 변경을 정식 건의함에 따라 재차 불거졌다. 결국 삼성 LG 대우등 가전3사가 논쟁이 계속될 경우 소비자에게 상당한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관련부처에 논쟁 중지를 요청키로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미국식은 미국 캐나다 한국,유럽식은 유럽 러시아 인도 대만 싱가포르 호주 등 40여개국에서 채택했다. 시장규모에선 미국식,국가 수에선 유럽식이 다소 우세한 셈이다. 유럽식이 우리 도시 구조에 잘맞고 모바일서비스에 유리한 만큼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및 MBC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뒤늦게 전송방식을 변경할 경우 컬러TV를 일찍 개발하고도 컬러방송이 늦어지는 바람에 부품 등 관련기술 개발에 뒤쳐졌던 전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전자업계의 주장도 간과하기 어렵다. 설사 유럽식이 기술면에서 더 낫다고 하더라도 역사상 중요한 표준은 단순한 기술 우수성보다 시장 선점세력에 의해 결정된 수가 더 많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전자업계의 경우 PDP(벽걸이) LCD(액정표시장치)등 각종 HDTV(고화질TV) 제작 기술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올해는 국내 월드컵경기중 3분의2 이상이 디지털방송으로 중계되는 등 국내 디지털방송 및 디지털TV 수준을 세계에 알릴 중요한 시기다. 따라서 전송방식 변경이나 그에 따른 디지털방송 일정 조정문제를 놓고 논란을 되풀이하는 건 자칫 디지털방송의 앞날은 물론 디지털TV 시장을 비롯한 전자업계 전반에 치명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지루한 논쟁을 거듭하느라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기보다는 난시청 가구 해소와 모바일기술 개발,셋톱박스 가격 인하등 미국식의 단점을 보완,홈네트워크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는 디지털TV의 세계시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