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승려를 대상으로 시험을 쳐서 인재를 뽑는 승과(僧科)가 처음 실시된 것은 과거제가 시작된 고려 광종때인 958년이다. 승과에 합격하면 '대선(大選)'이라는 법계(法階)가 주어졌고 이를 시작으로 대덕 대사 중대사(重大師) 삼중대사로 승진할 수 있는 국가고시였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몇 회에 걸쳐 승과가 실시됐고 몇 명의 합격자가 배출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승과는 조선에도 그대로 계승돼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3년마다 한 번씩 치러졌다. 그러나 억불숭유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성종 연산군 때는 승과가 일시 중단됐고 중종 때는 아예 폐지되고 말았다. 그 뒤 1550년 명종의 생모 문정왕후가 보우(普雨)를 기용해 벌였던 불교중흥책에 따라 승과는 복구됐으나 왕후의 죽음과 동시에 다시 폐지돼 버렸다. 서산대사나 사명대사는 이때 복구된 승과 출신의 인물이다. 임진왜란 뒤 승과 실시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없는 것은 고려 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국대전'의 승과 규정은 조선조 말까지 그대로 존속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처음 승랍 10년 이상을 대상으로 3급 승가고시를 실시해 비구 1백43명,비구니 1백78명 등 3백21명에게 각각 중덕,정덕의 품계를 주었다고 한다. 여성인 비구니가 더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합격자는 사찰주지나 총무원의 각 국장이 될 수 있고 도제(徒弟)도 둘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과거의 승과를 계승해 부활시킨 셈이다. 내년에는 승랍 20년,25년의 승려 재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이와함께 일반신도의 불교교양교육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제도개혁을 통한 불교중흥을 강조해 온 현 종단지도자들의 개혁의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것이라지만 너무 이상에 치우친 급진적 개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승가고시가 승려의 수행풍토 진작과 자질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속의 고시처럼 승진기회만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는 청정수행풍토가 선행조건이다. 부처님은 '흩어지기 쉬운 꽃들을 묶어 꽃다발을 만드는 끈'이 계율이라고 했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