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두곳과 강릉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를 놓고 여야가 어떤 평가를 할 것인지 궁금하다. 재·보선 자체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데도 과열·혼탁·폭력사태에다 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고소와 맞고소를 제기하는 구태가 연출됐다. 정치판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한국인의 정치지향적 성향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해방 후 1946년8월25일 현재 남한 인구는 1천9백36만9천여명이었다. 그러나 1947년5월20일 미·소 공동위원회에 제출된 정치단체의 수는 1백18개에 회원 수는 무려 3천8백45만여명으로 남한 인구의 두배에 이르렀다. 각 단체가 세를 과시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회원으로 등록시키다 보니 이중 삼중으로 가입돼 이런 결과가 나왔겠지만,해방공간의 그 혼란 속에서도 국민들이 정치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은 어쨌든 대단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으며,국민들 또한 정치에 관심을 쏟고 있는데 나라꼴은 왜 이런가.지금 이 시간에도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조국의 운명을 건지려는 사명감'때문에 정당을 새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장사가 잘 안되면 간판을 바꾸고 내부치장을 달리해서 신장개업을 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정치 판에서도 이런 일을 또 하려고 한다. 특정지역을 들먹이며 네편 내편을 가른다.염치없는 사기요 협잡이다. 오래 전 일이다. 방학 때 아이들에게 고향 가자고 했더니 큰 녀석이 "그건 아버지 고향이 아니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시골에는 어떤 추억거리도 없는데 그 시골이 그의 고향일 수가 없다. 60년대 중반 이후 도시에서 자란 세대들이 대부분 그럴 텐데 그들을 특정지역출신이라고 못을 박아 네편 내편을 가른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이미 지역감정의 노예가 돼있는 기성세대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썩어빠진 지역감정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역사의 주역은 못돼도 역사의 방관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은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는 한푼 두푼 적금 넣어 목돈을 만들어 가듯 성장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목돈이 굴러 와서 벼락부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국민 모두에게 복권에 당첨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서슴없이 한다. 그래서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 주식투자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 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런 발상을 정통 경제관료가 했을 리는 없다. 주가를 올리라는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덕성과 정통성을 자랑했던 문민정부는 국가경영능력이 없으면 그런 자랑이 의미가 없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물러갔다. 실질적인 여야 정권교체를 했다는 국민의 정부는 국민에게 무엇을 남기고 물러갈 것인가. 아직도 시간은 많고 길은 있다. 여당은 과거의 여당이 뭘 잘못했는가를 알면서도 그런 잘못을 되풀이한다. 야당은 과거 집권했을 때 비판하던 야당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들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집권 초에 훌륭한 구호와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야 할 때쯤 권력의 핵심에서 충격적 사건이 터졌다. 장영자,수서비리,한보비리,이용호 게이트와 분당 땅 사건 등이 그것이다. 전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은 있지만 그것이 정치인과 관련돼 있다는 게 일반국민의 인식인데 이걸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좋은 정치란 화려한 구호와 비전보다 우선 부정과 비리가 쉽게 행해질 수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정치인,특히 국회의원 개개인은 모두 훌륭한 분들인데 의사당에만 들어가면 모습이 왜 달라지는 것인가. 풍수지리설을 믿는 건 아니지만,터가 나빠 그렇다면 의사당을 옮겨서라도 제대로 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선을 사생결단식으로 치르게 되면 나라는 정말 거덜난다. 경제를 제대로 챙길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다음 정권에서도 희망이 없어 이민을 가려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이건 정말 심각한 일 아닌가.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