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예정대로 중동의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될지 불투명하다. 회의예정일이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여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회의개최 여부가 안개속에 싸여 있다는 현실은 세계경제가 처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괴멸시키기 위한 전쟁을 하는 미국과 미국을 지지하는 서방국가들은 이 혼돈의 와중에 반미,반서구 정서가 팽배한 중동국가에서 각료회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회의장소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WTO 각료회의는 21세기 최초의 다자간 통상협상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시작될지를 판가름하는 의미있는 모임이다. WTO 회원국들이 의제합의에 실패한다면,1993년 말 종료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의 합의에 따라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의 협상만 진행될 것이다. 이는 지구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도국에는 나쁜 소식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진국의 일방적인 경제원조가 아니라 외국의 열린 시장이며,자국 경제 자원의 배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시장을 열고 무역과 투자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경기침체를 '나만 살고보자'는 보호주의 장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30년대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지 알고 있는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들은 경쟁적인 보호주의의 파괴적인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2년 전에 실패한 시애틀 각료회의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WTO는 더 이상 세계무역규범 관리자로서의 신뢰를 상실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농산물과 서비스 협상은 진행될 것이지만,협상은 표류할 것이고 그 와중에 보호주의와 배타적 지역주의 속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될 것이 뻔하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미국이 테러 피해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와 담을 쌓는 보호주의로의 회귀가 아닌,더 개방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세계무역체제를 위해 WTO 뉴라운드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EU는 지금까지 다자체제가 개도국에 실질적 혜택을 주지 못했다는 일부 강성개도국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협상의제를 개발해야 한다. 뉴라운드를 이름만 '개발 라운드'라고 명명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뉴라운드 협상 출범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던 97년부터 일관되게 뉴라운드 협상의 조기 출범을 지지해 왔다. 무역자유화가 확대되고 부당한 수입규제조치가 완화되면 한국기업의 해외시장 진출기회가 확대되고 수출이 증대되어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뉴라운드를 적극 지지한다는 것이 한국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정부가 뉴라운드 협상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면서 수출시장 확대 기회만을 강조하고,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의 수입장벽 완화 중요성을 애써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역자유화의 혜택은 수출기회 확대를 통한 고용창출,수출증대 못지 않게 수입장벽이 완화됨으로써 발생하는 경쟁의 압력을 통해 산업구조가 비교우위의 경제적 논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그 결과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경제전반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서 발생한다. 수출기회 확대만 강조하는 것은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중상주의적 사고에서 한국의 통상정책이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한국이 진정으로 21세기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전략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격동하는 신세계 질서 속에 한국의 좌표를 설정하는 비전,구조조정의 고통을 극복하고 한국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제도를 뿌리내리는 전략,그리고 난마처럼 얽힌 이해갈등 구조 속에 허우적 거리지 않고 국가를 끌고 가는 결단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한국의 경제통상외교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답해야 한다. byc@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