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이후 한국은행이 석달 연속 콜금리를 인하, 시중에 대거 푼 돈이 은행과 투자신탁회사로만 몰리고 있다. 한은은 콜금리 인하를 통해 석달간 본원통화를 5조4천억원이나 방출했지만 기업대출, 회사채 발행 등 실물부문의 자금 경색은 되레 심해지는 양상이다. 반면 금융회사들은 남아도는 자금으로 가계대출이나 국고채 투기에 몰두, 돈이 금융권에서만 맴돌고 있다. 한은의 금리인하 효과를 희석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은 그럼에도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콜금리 인하 여부를 놓고 고심중이다. 미 테러참사 여파로 경기하강이 6개월이상 지속될 전망인데다 금융불안까지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 석달간 52조원 급증 =지난 3.4분기 은행.투신권의 수신은 무려 51조8천억원 급증했다. 은행이 25조7천4백억원, 투신은 26조9백억원이 각각 늘었다. 은행권 수신증가액은 7월엔 4조6천억원에 그쳤지만 8월 7조5천억원, 9월엔 올들어 최대인 13조7천억원이나 급증했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5조5백억원)과 한은의 추석자금(4조8천억원)이 지난달 집중 방출된 것도 한 요인이다. 투신권 수신은 은행의 예금금리 인하 덕에 7월 13조3천억원 급증했고 8월 5조4천억원, 9월 7조5천억원이 각각 늘었다. 이는 2.4분기 투신에서 8조9천억원이 빠져나가고 은행에 21조9천억원이 몰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는 투신권에서 빠진 자금이 은행으로 몰렸지만 7월이후엔 이례적으로 은행과 투신 수신이 함께 늘고 있다"고 말했다. ◇ 금리인하 효과 희석 =은행.투신권이 빨아들인 시중자금은 한은의 기대와 달리 실물경제로 좀체 가지 않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소매금융에 치중하는 일부 시중은행들은 기업대출을 기피하면서 남아도는 자금을 안전한 국고채나 투신 MMF(머니마켓펀드)로만 굴리는 사례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한은은 돈을 새로 찍어 공급하는 본원통화를 석달새 5조4천억원 늘렸다. 통화승수(M2/본원통화, 약 15배)를 감안하면 M2(총통화) 기준으로 무려 80조원이 풀린 셈이다. 그러나 테러여파로 증시 침체가 심화되면서 한은의 '의도'가 더욱 먹히지 않게 됐다. 금융연구원 이명활 부연구위원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은 한층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회사채는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1조2천억원 많았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