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2:31
수정2006.04.02 02:33
미국 테러 참사와 관련한 정부 대응이 지나치게 '미국 편향'으로 흐르면서 아랍권과의 협력관계가 손상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중동 국가들과의 지속적이고도 안정적인 경제 및 외교관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미 성향이 강한 대다수 아랍권 국민들의 정서를 보다 신중히 고려하는 외교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동은 국내 원유 수요의 80%를 의존하는 전략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올해에만 5백억달러가 넘는 플랜트(대규모 산업설비) 발주가 이뤄지는 등 '떠오르는 신흥시장'이라는 점을 적극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테러 참사에 대한 분명한 애도'차원을 넘어 서둘러 미국의 테러 보복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동전의 한쪽 면을 보지 않은 '성급한 대응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미국 테러 발생직후 발빠르게 대통령 명의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테러 보복에 대한 전폭적인 협조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바 있다.
18일 열린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재차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미국 테러 참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아랍권 정서에 대한 면밀한 관찰없이 지나치게 성급히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테러 참사와 관련한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협력은 공식절차를 밟아 추진하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당수 유럽지역 국가들과 국내 업계의 대응방식은 보다 신중하다.
유럽에서는 영국을 제외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테러행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시하되 보복 군사행동 참여에는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중동 사업비중이 큰 건설 및 플랜트 분야 국내 업계는 미국의 테러 보복이 어느 범위까지, 또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 성급하고 섣부른 대응을 삼가는 분위기다.
미국의 공격이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단순한 응징에 그치지 않고 이라크 등 일부 아랍권 국가와의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이같은 전면전이 발발하면 '미국의 우군은 아랍의 적'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라는 점을 업계는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플랜트 업계 등은 미국의 테러 보복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테러 구호성금을 내는 데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 미국 판매법인만 30만달러의 성금을 미국 적십자사에 전달했고 대부분의 다른 대기업들은 성금 납부여부를 둘러싼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동서남아팀 부연구위원은 "중동지역은 매년 5백억달러가 넘는 신규 플랜트 발주가 이뤄지는 황금시장인만큼 보다 정교한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이란 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권의 맹주들과 정치·경제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원한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