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근작 "AI"에서 인류는 결국 멸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대부분의 땅이 물속에 잠겨 식량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섹스로봇까지 동원해 출산을 억제한 채 로봇에게 모든 일을 맡긴다. 그러다 빙하기가 다시 닥치는 바람에 인류는 사라지고 로봇만 남는다. 역시 올여름에 개봉됐던 "혹성탈출"은 원숭이에게 지배당하는 인간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의 세상은 과연 끝날 것인가. 이전에 나온 영화속에서 지구나 인류의 종말은 주로 혜성 충돌이나 핵미사일 폭격,외계인의 침입 때문으로 예견됐다.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는 혜성 충돌,"인디펜던스데이"는 외계인의 침입,"피스키퍼"는 핵미사일 폭격에 따른 극한상황을 다뤘다. 픽션인 만큼 최후의 순간 종말은 면하지만 과정은 절박하다. "딥 임팩트"의 경우 두개의 혜성중 하나가 바다에 떨어지면서 해일이 육지를 덮치고 엄청난 천재지변 앞에 미국정부도 속수무책이다. 나머지 하나라도 막으려 떠난 "메시아호"와의 소식이 끊기자 마침내 과학자 예술가등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과 50세 미만 추첨 당첨자만 노아의 방주같은 방재시설로 대피시킨다. 지구의 종말은 눈앞에 다가와 있고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절대절명의 순간 메시아호 함장은 사고로 눈이 먼 젊은 대원에게 "허먼 멜빌의 "백경"과 마크 트웨인 소설을 읽었느냐"고 묻는다. 미혼의 여성앵커는 추첨에서 떨어진 아기엄마에게 생존의 자리를 양보하고,천재과학자는 애인을 구하려 결혼하고,애인을 찾으러 사지로 뛰어드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고급시계를 풀어준다. 모든 게 끝난 듯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내일을 기약하며 산자의 도리를 다하려 애쓴다. 현실과는 다른 영화속 얘기일 뿐일까. 미국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사건을 놓고 또다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앞세운 종말론이 확산되고 있다. 17세기 중반에 했다는 예언의 자구까지 들먹여 3차대전이 발발할 지도 모른다는 식이다. 지구와 인류의 종말론은 천재지변이나 예측못한 재앙이 생길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곤 한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에 멸망한다던 지구는 아직도 멀쩡하다. 기분 나쁜 "예언"이나 종말론은 사람들에게 좌절과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급기야 허무의식을 심어 현실로부터 도망치게 만들고 결과는 끝없는 추락이다. 현실이 감당하기 어려울수록 터널 끝에 있을 푸른 하늘을 얘기해야 한다. 안그래도 힘든데 지구의 종말이니 3차대전이니 하고 떠들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