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영동에서 용산전자상가로 향하는 고가도로를 넘어가다 보면 달콤한 냄새가 난다. 오른쪽에 세계적 상품이 된 초코파이 공장이 있음을 알려주는 향기다. 이 건물 6층에 지난 1일 동양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 출범한 오리온그룹의 총수 담철곤(46) 회장 방이 있다. 10여평 남짓한 이 방은 최신 경영관련 서적이 빼곡하게 들어선 서재와 책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상위엔 노트북PC가 달랑 놓여 있다. 담 회장은 이 노트북을 이용해 미국 등의 인터넷 서점에서 원서로 된 경영서적을 주문해 배달을 받는다. 그가 최근 사들여 읽고 있는 서적은 'CEO가 갖추어야할 다섯가지 덕목' '80대 20 법칙' '우리가 알고 있는 마케팅은 끝났다' 등이다. "기업의 경영환경이 얼마나 빨리 변화됩니까.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에 적응할 태세를 갖추지 못하면 기업은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담 회장의 이런 노력이 잘 나갈때 경영혁신을 이뤄 위기에서 오히려 빛을 낸 대표적 기업인으로 손꼽히게 했다. 그는 지난 94년 당시만 해도 생소한 용어인 '사업재설계(BPR) 프로그램'을 동양제과에 도입해 보기좋게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당시 한국경제는 성장을 구가하며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지던 시절. 그러나 잘되는 듯 보이나 언제든 불황이 닥칠 수 있고 이는 곧 기업을 위기로 몰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외국의 한 컨설팅사에 의뢰해 회사에 대한 정밀진단을 했다. 참담한 성적이 나왔다. 생산 판매중인 제품의 80%가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20%의 제품이 나머지 적자 사업을 보전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담 회장은 단호하게 사업구조 조정을 실시했다. 1백30여종에 이르던 제품 수를 절반 정도인 70여종으로 줄였다. 적자품목을 무조건 없애고 코아(핵심)브랜드 전략을 취했다. "제과는 새로 선보일 물건이 많고 신제품을 내놓으면 단기적으로는 판매가 늘어나지요. 그러나 이게 안팔리면 반품 등으로 회사에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가 되는 수가 많아요" 이렇게 진행된 사업구조조정은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들어갔을 때 빛이 났다. 많은 기업들이 적자를 내며 쓰러져 가던 97년부터 동양제과의 이익은 크게 증가했다. 90년대초 20억∼30억원대에 머물러 있던 순이익이 97년 75억원, 98년 1백8억원, 99년 2백19억원, 2000년 2백64억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MSNBC는 구조조정에 성공한 한국 기업인으로 담 회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담 회장은 이렇게 체제정비를 이룬뒤 다른 기업들이 사업 축소에 한창이던 99년부터 확장전략을 펼쳤다. 외식 미디어 영화 케이블TV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분야였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제과의 주고객은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들은 또 만화를 즐깁니다. 케이블TV 만화채널(투니버스)을 시작한 배경입니다. 이런 즐거움은 영화나 외식 등도 마찬가지지요. 핵심사업인 제과와 확장을 추진한 엔터테인먼트사업이 서로 관련된 업종이라는 얘기지요" 엔터테인먼트사업에의 진출은 철저하게 외국사나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동양제과가 IMF이후 끌어들인 외국자금이 1억2천만달러(담배인삼공사 투자금 2백60억원 별도)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소니 창업자의 아들이 대표인 모리타 인베스트먼트 인터내셔널사(네덜란드 소재)로부터 3천만달러를 유치해 미디어플렉스를 설립하면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또 세계적 영화체인업체인 미국 LCI사로부터 2천만달러를 투자받아 COEX몰에 메가박스 영화관을 개설했다. 이런 외자유치가 가능한 배경에 대해 그는 "매년 초 미국 하버드 프레지던트 세미나에 참석, 세계적 기업경영자들과의 교류에서 큰 도움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담 회장은 이제 중국 등 해외진출 강화를 통해 장래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 진출은 창업회장(고 이양구 회장)이 생전에 실현할 수 없었으나 소신이던 '서해안시대가 열린다'는 유훈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동양제과는 지난 97년 중국 허베이(河北)성 정부와 합작, 베이징에 초코파이 공장을 완공했다. 최근엔 총 4천만달러를 투자하는 상하이 공장의 건립에도 들어갔다. 장기적으로 내륙에도 공장을 지을 계획이며 동남아시아 등으로의 진출도 꿈꾸고 있다. 오리온그룹은 이를 통해 2005년엔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만 전체 매출의 20%가량(2천억원 이상)을 올린다는 목표다. "행복한 사원이 많은 회사를 만든다는게 저의 경영철학이고 추구하는 전략이기도 하지요. 오리온그룹의 모토가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 이를 이루자면 이런 사원이 많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그래서 3F(Fair, Future, Fun)를 강조한다. 경쟁이나 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Fair,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적으로 사고하는 Future, 가능성을 보고 즐겁게 일하는 Fun이다. "95%의 실패보다 5%의 가능성을 보고 일하는 직원들에겐 충분한 기회를 줄 것입니다" 담 회장은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으로 건너와 대구에서 자리잡은 화교 출신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외국인학교를 나왔으며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공부했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이양구 동양창업 회장의 둘째딸인 부인 이화경 사장과 만나 10년간에 걸친 열애 끝에 지난 80년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과 함께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동시에 동양시멘트에 구매과장으로 들어갔다가 81년에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겼다. 동양제과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 수업을 받은 뒤 이 회장이 타계한 89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동양제과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담 회장은 아침일찍 남산에 있는 한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겨울엔 스키장을 자주 찾기도 한다. 담 회장은 오는 14일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윤진식 기자 jsyoon@hankyung.com --------------------------------------------------------------- [ 약력 ] 1955년생 78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졸업(마케팅) 80년 한국국적 취득 및 결혼, 동양시멘트 과장 입사 81년 동양제과 입사 83년 상무 84년 전무 85년 영업담당 부사장 87년 오리온프리토레이 대표 89년 동양제과 대표이사 사장 93년 동양그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