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정기자의 '패션읽기'] '물건너면' 고급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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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새로운 패션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마레 거리.
첨단 유행을 이끄는 디자이너들과 아티스트들이 모여드는 지역인 만큼 이곳 행인들이 들고 있는 쇼핑백은 지금 가장 인기있는 상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올초 마레를 찾았을 때만 해도 패션에 관해 유독 자존심을 세우는 국민답게 파리인들의 팔에는 루이비통 에르메스같은 프랑스 최고급 브랜드의 쇼핑백이 들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 다시 들른 마레는 달랐다.
비싸보이는 고급종이 쇼핑백 대신 평범하고 누런 종이봉지 위에 영자 'MUJI'와 한자 '無'가 새겨진 쇼핑백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
일본의 생활용품전문점으로 문구류 생활소품 운동기구 등과 티셔츠같은 간단한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티셔츠 한 벌에 2만원 미만의 중저가.
일본에서는 싼 가격덕분에 실속파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하이패션과는 거리가 먼 브랜드로 취급받고 있다.
그런데 이 중저가 제품이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고급패션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원가절감차원에서 만든 누런 재활용포장지와 깨끗하다 못해 단순한 무지의 디자인이 화려한 스타일의 홍수속에 살고 있는 파리사람들의 호기심을 오히려 자극했기 때문.
일본풍에 대한 서양인들의 무조건적인 호감도 한몫했다.
일본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가난한 유학생들의 가구로 유명한 스웨덴의 이케아(IKEA)가 스칸디나비아식 스타일을 동경하는 일본 상류층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화장품 오리진은 재활용포장지를 쓰고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는 중저가 브랜드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멋내기보다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주고객이지만 한국에서는 늘 유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트렌드세터(Trend Setter)'가 가장 큰 소비집단이다.
이처럼 현지에서는 값싸고 실용적인 '대중 상품'이 물을 건너면 '고급 패션'으로 대우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배경에는 상대방 나라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불고 있는 해외 명품붐도 유럽귀족문화에 대한 선망에서 시작됐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다음은 브랜드가 갖고 있는 이미지다.
무지루시료힌에 있는 상품은 값 싸지만 결코 싸구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케아도 자신만의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가격과 관계없이 대접받는 브랜드.
우리도 이런 제품 한두개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s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