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독감을 앓고 난뒤 직장에 다시 나가면서 의사에게 담배 끊고 헬스클럽에도 나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곧바로 수두에 걸린 사람"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등 과거 호랑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이요즘 느끼는 기분을 묘사한 대목이다. 이 잡지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97-98년 금융위기에서 회복한지 겨우 2년만에 또다른 경기침체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는 각국 정부, 기업, 은행들이 약속했던구조조정을 완수하지 않아 강력한 내수회복을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수출의존도를높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내수는 회복되지 못하고 수출의존도만 높아진 상태에서 최대의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고 특히 의존도가 높은 정보기술 제품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붕괴되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태국, 대만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감소했고 지난해 각각 9%와 10%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과 홍콩은 그나마 올해 2-3%의 성장을 이룩할 것으로 보여 다행이라고 잡지는 말했다. 지난해초 거의 30%의 성장률을 보였던 동아시아 국가들(중국 제외)의 수출은 지난 1년간 10% 가량 감소했고 중국도 GDP 성장세는 유지하고 있으나 수출증가율은 40%에서 4%로 급격히 둔화됐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수출이 GDP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라고 잡지는 말하고 이같은 개방성이 지난 수십년간 이 나라들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으나 또한편으로는 세계경제의 침체에 그만큼 취약하도록 만들었다고분석했다. 정보기술 장비 수출에 대한 높은 의존도 역시 취약성을 높였다. 모건스탠리는지난해 아시아 GDP 성장의 40% 정도가 미국에 대한 정보기술 제품 수출에서 온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붐이 끝나고 컴퓨터와 전자제품 신규수요는3분의 1로 격감했다. 90년대말 미국경제의 호황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로 경쟁력이 크게 강화된 아시아 호랑이들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도록 도와줬다고 잡지는지적했다. 그러나 수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내수는 뒤쳐졌고 결과적으로 이들 아시아국가의수출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국의 경우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96년의 30%에서 지난해 45%로 높아졌고 태국은 39%에서 66%로 높아졌다. 중국이 올해8%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수출비중이 23%에 불과하고 정보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훨씬 더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수도 더욱 호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또다시 금융위기를 겪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잡지는 진단했다. 지난 97-98년에 비해 경제상황은 훨씬 더 좋은 상태라는것이다. 과거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 대신 이제는 흑자를 보이고 있고 외환보유고도훨씬 더 커졌다는 점, 또 홍콩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는 과거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고정환율제를 모두 포기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지난 90년대말에는 자본이 이 지역에서 계속 빠져나가면서 금융위기가 삽시간에번졌지만 오늘날에는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정보기술 제품을 해외에서 아웃소싱했기 때문에 정보기술장비의 공급선을 통해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잡지는 말했다. 아시아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는 경제활력이 되살아났다는 조짐으로 해석됐으나 사실은 약속했던 구조조정을 완성하지 않음으로써 강력한 내수회복세를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잡지는 주장했다.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위기에서 회복되자 정부들은 개혁을 늦춰도 될 것으로 판단했다. 기업들은 자산매각과 부채 감축을, 은행들은 부실채권 정리를 신속히 추진하지 않았고 정부는 서비스시장 규제완화에 실패,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정보기술제품 수출붕괴를 상쇄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취약한 은행시스템과 부적절한기업구조조정은 내수확대를 억제했다. 부실채권이 지나치게 많은 은행들은 대출을꺼리고 부채에 짓눌린 기업들은 차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금리는 수요를 자극하는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잡지는 평가했다. 담배를 끊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해도 수두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건강해질수록 회복속도는 빨라진다고 잡지는 말했다. 마찬가지로 철저한 개혁으로 세계적인 경기둔화의 영향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수출침체로 인한 타격을 완화시켜줄 수는 있다고 잡지는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잡지는 성장둔화가 정치가들로 하여금 강력한 개혁을 피하도록 유도할 위험이있다고 경고하고 기분이 우울하다고 느낄 때 담배 끊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과 같은경우라고 설명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chkim@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