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경 <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 prangel@sac.or.kr >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뮤지컬로 만들어 브로드웨이를 휩쓸었던 뮤지컬 '렌트'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작품성이나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우리 공연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더욱이 '렌트'는 뉴욕 뒷골목 젊은이들의 좌절과 희망을 때로는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에 제작자의 고민은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탄탄한 드라마 구조,록부터 힙합 댄스뮤직까지 다양한 음악장르와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구 덧칠해진 그래피티로 가득한 무대와 어깨를 움찔 올리는 제스처 등은 너무나 미국적이어서 정서적 거부감이 일어날 정도였다. 막이 오르면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대다수 젊은 관객들의 반응은 너무도 뜨거웠다. '렌트,너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가 캐내고 말 테다!'하며 칼자루를 들이대는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공연을 즐기면서 박수를 보낼 준비를 갖춘 관객이 몰려들었다. 때로는 깔깔거리고 때로는 눈물을 줄줄 흘릴 준비가 된 관객들은 공연의 감동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중년 이상의 관객들은 이런 반응에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객석의 대세를 거스르기 어려웠다. 흥행은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뮤지컬계에 중요한 레퍼토리 하나를 추가했다. 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 그때의 열광적인 객석이 생각난다. '친구'역시 제대로 만든 한국영화에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된 관객 덕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나쁜 영화'라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중에도 '친구'라는 대세를 막지는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사회문명비평가 제러미 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유희'라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 관객은 유희 중심의 문화적 접속에 무척 익숙해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지불한 문화상품을 해석하여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 순간의 문화적 감흥,문화적 접속을 최대한 누리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문화예술의 내용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유희의 시대는 벌써 우리 곁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