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인 최경식(27)씨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중국어학원에 등록했다. 당초에는 고교 3년간 배운 독어를 계속 공부할까 했지만 대부분 기업이 독.불어보다는 중국어나 일어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최씨는 "친구들도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는 독어와 불어를 공부했지만 정작 사회에 나갈 때는 일어나 중국어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 교육이 여전히 일부 언어에 편중돼 있어 "사회적 필요성"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2백32개 인문계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개 이상의 제2외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는 학교는 전체의 1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언어별로는 독어가 1백41개교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불어는 1백33개교로 그 다음을 차지했고 일어는 3위에 머물렀다. 이밖에 중국어(45개교)와 스페인어(12개교)는 비중이 미미했다. 하지만 이같은 제2외국어 분포는 교실을 벗어나는 순간 달라진다. 오히려 일어나 중국어에 대한 선호도가 일반적으로 훨씬 높다. 제도교육과 사회적 필요성간 불균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시내 외국어학원의 경우 대체로 일어와 중국어 강좌만 개설해 놓고 있다. 독어와 불어강좌를 연곳도 있으나 수강생은 다른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이다. K외국어학원의 한 관계자는 "일어와 중국어 비중이 전체의 60% 이상"이라며 "독어와 불어강좌도 개설돼 있긴 하지만 수강생의 대다수는 독.불어 전공자이거나 그 지역 유학 준비생에 국한돼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교역량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5월까지 일본과 중국의 수출입물량은 각각 70억불을 넘어선 반면 독일은 18억달러였고 프랑스는 10억달러를 밑돌았다. 일선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점을 감안,최근 들어 제2외국어의 선택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S고등학교의 김모 교장은 "지난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다수가 일어와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길 희망했다"며 "대책을 마련중이지만 학생들의 요구에 1백% 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부전공제도를 활용해 기존의 독.불어 교사를 다른 과목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이지만 수업의 효과가 걱정되고 신입교사를 채용하는건 학교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설명이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독.불어 교사를 다른 언어교사로 대폭 교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내년부터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중시하는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더라도 제2외국어의 경우엔 대부분의 학교가 제한적인 범위내에서만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교육계 일각에서는 "제2외국어 과목을 현실적인 필요성만으로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독.불어의 경우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