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모험정신으로 충만해야 할 아이들이 학업성적에 가위눌려 바짝바짝 마르고 자진해 가고 있다. '내신제'란 어른이 저지른 악몽 때문이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내신제란 '대학교 입학 응시자 선발과정에서 고등학교 때의 학업성적과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평가치를 반영하는 제도'라고 돼 있다. 그 취지와 목표는 교육정상화,교권회복,지역간·학교간 평준화 촉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내신제는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대입내신제의 본래 취지는 대학 선발의 타당도를 높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데 있었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지 않고,3년간 학업성취를 고려하는 것이 학생선발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고,또 학생 편에서도 3년간 공부한 뒤에 단 한번의 시험으로 판정을 받는데 따르는 위험부담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내신제는 그럴듯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열입시를 고등학교 전과정에 확장시켰을 뿐이다.내신제는 고등학교 전과정을 '입시전장화'했다. 입학하자마자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아이들이 성적경쟁에 내몰려 점수벌레가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음악도,미술도,체육도 모두가 점수니 즐거움은 있을 수 없다. 1학년 때 한 두번 시험을 망치면 애초부터 좋은 대학 가기는 틀린 일이 된다. 그러니 아이들은 부족한 잠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학교로,학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달려야 한다. 거기서 배겨내지 못하면 낙오하며,낙오자들에게 학교는 잠재적 비행의 발원지가 되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한 한 최고의 것을 주고자 한다. 자식들이 좋은 옷과 음식,교육을 누리도록 애를 쓴다. 그런데 정작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사랑스런,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들이 겪는 불행과 고난을 당연시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싫어 조기유학의 고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는 하다 내신제의 현실을 직시하자.내신제는 학교교육을 정상화시켜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교육을 송두리째 점수따기로 전락시켰을 뿐이다. 내신제는 고등학교 과정을 철저한 암흑시대로 만들거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점수따기 싸움터로 만든다. 내신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한때 카뮤나 사르트르에 심취해 밤거리를 헤매다가 학교공부를 등한시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려 궤도에 복귀한 경험을 가진 어른들도 적지 않다. 그 때의 위기극복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원동력이 됐다는 증언들에 폭넓은 공명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운 청소년기,이 때의 체험과 추억이 험난한 세파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내신제가,고등학교 신입생에게까지 확장된 입시경쟁이 이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평균점수 5점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숨을 돌리고 여유를 부릴 배짱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번 탈락하면 절대적으로 낙오하는 사회,우리의 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형옥을 강요할 것인가. 국내에서의 고난을 피한답시고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타향에 보내 그 형극을 걷게 해야만 하는가. 얼마전 고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일일교사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교실이 환할 만큼 밝고 건강한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맑은 얼굴,꿈많은 눈길들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내신제를 철폐하든지,고등학교 3학년 1년만,그것도 대등급제로 단순화해 유지하든지,무언가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그 어떤 과외,어느 학원수업보다도 값지고 고귀한 아이들의 꿈과 추억을 되살려 주려면,그 도입취지로부터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내신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최소한 고등학교 1학년만이라도 입시자유지대를 만들어 주자.아이들에게 꿈과 모험의 기회를 되돌려 주자.어른들의 알량한 정책적 궁리,그 아둔함과 무책임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이 삶을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절망부터 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joonh@snu.ac.kr